“중간에 슬쩍 ‘공식 일정’ 끼워 넣으면 처벌 쉽지 않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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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국회의원 ‘외유성 해외시찰’ 법정서도 유-무죄 엇갈려

“배 한번 타실래요?”

2014년 불거진 여야 국회의원의 외유성 해외 시찰 논란은 한국선주협회 관계자의 ‘달콤한 제안’에서 시작됐다. 당시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과 여야 의원·보좌진 등 10여 명은 △중국 상하이(1인당 135만 원) △일본 오사카(1인당 797만 원) △인도네시아·싱가포르(1인당 581만 원) 항만 시찰을 다녀왔다. 일정에는 골프나 복합 리조트 관광도 포함됐다. 물론 여야 의원들은 국회사무처에 아무런 국외출장 신고를 하지 않았다.

검찰은 당시 박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했지만 법원 판단은 오락가락했다. 1심은 오사카와 인도네시아 시찰은 유죄로 인정한 반면 상하이 시찰은 “일정과 비용이 적정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민의 수렴 업무와 관련이 있어 불법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전부 무죄를 선고했고,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됐다.

국회의원의 외유성 해외 출장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앞서 1991년 국회 상공위원회 소속 이재근 위원장 등 국회의원 3명이 피감기관인 자동차공업협회의 돈으로 북미 지역을 시찰하고, 여행경비 명목으로 1만6000달러를 지원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유죄가 확정된 적이 있다.

그러나 외유성 해외 시찰에 대한 감사나 수사가 이뤄진 적은 많지 않다. “중간에 슬쩍 ‘공식’ 일정을 끼워두기 때문에 법정에서도 다툼이 치열하다. 국회의원 직무 범위도 포괄적이어서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국회의원을 잘못 건드렸다가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검찰 관계자)는 이유 등에서다.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를 지내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피감기관 예산으로 미국과 유럽에 출장을 다녀온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건은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선 김 전 원장과 피감기관 사이에 직무 관련성이 있었던 만큼 외유성 출장이 ‘뇌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범죄의 고의는 스스로 정한 기준대로 가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피감기관과 기업을 상대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던 그의 평소 의정활동과 발언을 감안한다면 미필적으로라도 김 전 원장이 대가성을 인식했을 수 있다는 것. 반면 “명백한 대가 관계가 아니라면 적용이 어렵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국회의원#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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