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불출마 결심에… “댓글 책임 시인하는 모양새” 黨靑서 만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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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파문 확산]김경수 의원 “경남지사 출마 강행”

“정쟁 중단 위해 신속한 수사를”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쟁 중단 위해 신속한 수사를”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9일 오후 4시 30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두 눈이 충혈된 채 준비한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오늘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쟁 중단을 위한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필요하다면 특검을 포함한 어떤 조사에도 당당히 응하겠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정쟁 중단’과 ‘정치 공세’ 부분을 읽을 땐 목소리가 한 톤씩 올라갔다.

김 의원은 이날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을 보냈다. 오전 10시 30분 경남도청 서부청사에서 예정된 출마 선언을 불과 1시간 40분 전에 갑자기 취소한 뒤 당 긴급 대책회의가 잇따랐고 하루 종일 ‘출마냐, 불출마냐’를 놓고 고민하다 출마를 선택했다.

김 의원은 “불출마를 포함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함께 고민했다. 당에서 지도부와 상의하고 (출마 여부를) 발표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 어제는 “불출마” 오늘은 “출마”

김 의원은 이미 18일 저녁 불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범계 수석대변인 명의로 민주당 출입기자들에게 ‘19일 오전 9시 국회 정론관 김경수 의원 기자회견’이라고 적힌 문자메시지를 19일 오전에 보내도록 전날 오후 10시경 예약발송을 걸어놨다. 19일 오전 9시 기자회견 내용은 김 의원의 경남도지사 불출마 선언이었다. 이는 박 수석대변인 등 당 지도부가 이미 전날 김 의원의 불출마 의사를 전달받고, 그의 뜻을 수용할 의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8일 경남 김해 자택에서 하룻밤을 묵은 김 의원은 불출마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19일 오전 7시 김해공항에서 서울행 첫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오전 상황이 급반전됐다. 민주당은 예약발송 서비스에 따라 김 의원의 ‘오전 9시 기자회견’ 문자메시지를 출입기자들에게 발송한 지 2분 만인 오전 8시 32분 서둘러 ‘기자회견 취소’를 알리는 문자를 다시 보냈다. 이어 17분 뒤 김 의원 측은 이날 오전 10시 반으로 예정된 경남도지사 출마선언을 취소한다는 공지를 돌렸다. 그 시간 이미 서울에 와있던 김 의원이 1시간여 만에 경남도청으로 가서 기자들을 만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무엇이 경남도지사 불출마로 기울었던 김 의원의 마음을 돌려놓았을까.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새벽 김 의원의 불출마 소식을 접한 몇몇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책임을 시인하는 걸로 비칠 수 있다”며 적극 만류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당 지도부가 처음에는 김 의원의 불출마 의사를 수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불출마 선언이 가까워오니 ‘뚜렷한 죄가 없는데 왜 책임을 지느냐’는 목소리가 번졌다”고 전했다. 지방선거 판 자체가 드루킹 파문으로 뒤덮일 것을 우려해 김 의원의 불출마를 받아들이려던 당 지도부도 ‘김경수가 무슨 죄냐’는 당내 여론이 확산되자 입장을 바꿔 출마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 靑 “김경수 불출마 안 돼” 당에 메시지

실제로 19일 오전 11시 추미애 대표와 이춘석 사무총장, 박 수석대변인 등 당 지도부가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오후 4시까지 마라톤 회의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도 “불출마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지도부가 입장을 바꿔 김 의원에게 출마를 설득한 데에는 청와대의 메시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상황이 바뀌자 김 의원은 이날 몇 시간 동안 서울 모처에서 장고를 거듭하다 결국 오후 4시 30분 국회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뒤 “취소했던 경남도청 기자회견을 20일 오전에 열겠다”고 밝혔다.

당청은 김 의원이 불출마할 경우 명분은 물론 선거전략에도 불리하다고 최종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의 출마 여부와 무관하게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특검 추진을 주장하며 드루킹 파문을 쟁점화할 것인 만큼, 그럴 바에는 출마해서 당당하게 해명하고 지지층 결집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야당이 그의 불출마를 계기로 댓글 조작 사건으로 정국 자체를 흔들려 했을 것이란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어차피 바람이다. 김경수가 흔들리면 야권이 댓글 조작 사건으로 똘똘 뭉쳐 PK(부산경남)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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