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수사권 폐지’ 협의도 없이 덜컥 발표… 정치권 “국회 우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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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안 논란]국회 법안처리 난항 예고

국가정보원이 그동안 정보기관의 핵심 업무였던 대공(對共)수사권 폐지를 골격으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서둘러 발표한 것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회 통과라는 관문을 무시하고 청와대와 여당, 국정원이 사전 조율이나 협의 없이 발표를 강행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대공수사권을 어느 기관에, 어떻게 이관하겠다는 대안도 없는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때 통과시켜 달라는 건 국회 우롱”이라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 서훈 국정원장 기자회견 북한 도발로 취소

청와대에 따르면 당초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 개혁안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0일 “서 원장이 직접 국민께 설명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청와대도 찬성했다. 다만 북한 미사일 도발로 며칠 연기됐을 뿐이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이르면 다음 주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의 과오를 사과하는 한편 개혁 청사진을 설명할 계획이다. “북한 업무에 집중해서 안보위협에 잘 대처하려는 것이 개혁의 주요 목표”라는 취지로 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개혁안 발표만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지 구체적인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태도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원 개혁안은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주도적으로 진행했을 뿐 청와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개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서 원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가 크다는 점도 청와대가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제부터 국회 차원에서 협의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견해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상의 당정협의 회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요 내용은 보고받아 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법무부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안을 제시하며 국회 논의를 시작한 것과 비슷하게 국정원안을 토대로 당정, 여야가 협의해 나간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 ‘정치적 화약고’ 대안 없이 선(先)폐지 발표

대공수사권 폐지는 올해 7월 국정원의 추진 방침이 처음 알려질 때부터 ‘정치적 화약고’로 꼽혀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과 맞먹는 이념 대결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런데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당일 국정원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해 열린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갑작스레 보고를 했다. 의사일정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야당 정보위원들에겐 사전에 대강의 내용은커녕 일정조차 귀띔이 없었다고 한다. 한 야당 정보위원은 “회의장에 들어가 보니 개정안 문건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고 했다.

대공수사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공수사권은 국가경찰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해 대공 수사에 빈틈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치경찰 관련법이 통과돼야 한다는 선결조건이 있는 데다 집권 이후 여권에선 경찰의 비대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에서도 “안보수사청 등 별도 기구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국무총리실 또는 법무부 산하 안보수사청 신설 △공수처와 연계한 한국형 연방수사국(FBI) 도입 등이 현재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보위 외에 다른 상임위가 법안을 함께 처리해야 할 난제인 셈이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개혁안을 무산시키려는 국정원 고도의 셈법일 수 있다”고 비꼬았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낸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에 “대공수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지, 한다면 누가 하겠다는 건지 걱정이 많다”고 적었다. 그는 또 “정보기관은 명칭이 변경되고, 조직이나 임무도 바뀐 적 있지만 대공수사를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반면 여당 내에선 “개혁 내용과 기관 명칭이 대통령 공약이나 당의 방침과 일부 결이 맞지 않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국정원의 직무범위 규정에 ‘방위산업 침해, 경제안보 침해 사범’ 등을 적시해 놓은 것을 두고 한 여당 정보위원은 “국내 정치 개입 소지를 남겨 둔 것이라 수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우열 dnsp@donga.com·한상준·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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