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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이진구 기자의 對話]조훈현 “하수인 나도 수가 보이는데… 고수들이 왜… ”

입력 2017-06-05 03:00업데이트 2021-01-2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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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조훈현 의원의 형세 판단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은 지금 대마에서 미생마가 된 상태. 그는 “마치 집도 없고, 곤마만 많은 바둑 같은 상황”이라며 “상상도 못할 엄청난 강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정치라는 바둑판. 첫 수를 둔 지 1년이 지났다. 아직은 초반전. 하지만 쓰나미처럼 밀려온 내우외환에 알파고 앞의 인간처럼 속수무책이었다. 손 따라 두면 진다는데….

국수 조·훈·현.

그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에게 정치는 너무나 새로운 분야였고, 당시 새누리당은 막장공천으로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판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격변의 시간이었다. 바둑은 수읽기의 싸움. 수읽기의 최정상이 본 정치라는 바둑판은 어떤 세계였을까.
 

이진구 기자
● 정치인이 된 지 1년이 됐다.


○ 누가 그러더라. 한 10년 사이에 겪을 일이 1년 안에 벌어졌다고. 나도 모르게 여당 됐다, 야당 됐다 정신이 없더라. 밖에서 대충 살다 들어왔는데 너무 다른 세계였다. 그 와중에 엄청난 일들이 계속 터지고….

뭐가 그렇게 다르던가.

○ 교문위가 가장 뜨거웠거든(그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이다). 최순실 사태 때 K스포츠재단, 이화여대 부정 입학 등이 다 교문위 사안이지. 국정 교과서도 그렇고. 그래서 (여야가) 서로 대놓고 ×× 욕하고, 고함지르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데…, 어이구, 옆에서 보는데 한바탕 할 것 같더라고. 그런데 끝나자마자 방송사 카메라 불 꺼지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악수하고 같이 저녁 먹으러 가더라고? “어이, 오늘 술 한잔하자”면서…. 난 둘이 싸울 때 ‘이거 정말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했지. 우리 같으면 며칠 동안 아예 말도 안 하잖아? 그럴 거면 처음부터 좋게 말하든지…. 어느 쪽이 진짜 마음인지…. 그런데 이게 이 세계의 ‘정석’인 것 같아. 사회의 정석은 아니고.


정치에 입문할 때 주위에서 뭐라 안 했나.

○ 엄청 들었어. 이미지 버린다고, 왜 흙탕물에 들어가냐고…. 근데 (국회의원) 되기 전에는 그러다가 막상 되니까 아무 소리 안 나오더라고…. 200가지가 달라진다는데 뭐가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고, 잘못 알려진 것도 많은 것 같아. 금배지 달아도 일반 사람들은 아무도 안 알아주던데….

원래 보수인가.

○ 굳이 말하면 보수 속에 진보라고 할까. 사람은 변하지 않으면 끝이야. 하지만 상황에 맞게 변해야지. 좋은 것은 지키면서. 예를 들면 부모나 스승을 대하는 게 우리 때와는 너무나 달라졌다고 할까. 선생님이 제자를 때리고, 제자가 선생님을 신고하고…. 솔직히 나는 교육자가 노동조합을 만드는 게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돈을 받고 일하니까 노동자일 수 있는데, 교육이 과연 그렇게만 볼 성질의 것인지…. 자신은 굶더라도 애들 밥 사주고 그러는 게 스승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부겠지만 지금은 ‘땡’ 하면 퇴근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고…. 폭력은 안 되지만 사랑의 회초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걸 폭력인지 아닌지 따지고 신고하니까 일이 커지지.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변하자는 거지.

이렇게 사면초가인 바둑이 있었을까. 대마에서 미생마로…. 곤마(困馬) 주제에 늘 다니던 길로만 가려고 한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필생의 수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한국당이 가장 안 변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 너무 과거 습관에 파묻혀서…. 그게 통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지금은 그런 건 안 통하는 시대다. 전에 집권여당에 과반 의석의 ‘대마’여서 ‘대마불사’를 생각 하나본데 지금은 ‘미생마’인데….

‘임을 위한 행진곡’ 논쟁은 좀 유치하지 않나.

○ 나도 제창과 합창의 차이를 국회 와서 처음 알았다(합창은 합창단이 주가 되어 부르며, 참석자들이 따라 부르는 것은 자유의사다. 제창은 참석자 모두가 따라 부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용어적인 차이일 뿐 실제로는 자유의사에 따라 부르거나 안 부르면 된다). 구태여 그것을 따질 필요가 뭐가 있나 싶기도 하고. 합창이면 어떻고 제창이면 어떻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 부르면 되고 아니면 안 부르면 되지. 국민이 살아가는데 이게 무슨 상관인지. 그냥 서로 감정싸움이지. 그렇게까지 크게 싸울 일은 아니지.
 
 


한국당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나는 아직 정치를 잘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느낌이 그래. 그대로 있으면 죽는 거지. 바둑도 좋을 때는 집도 많고 세도 두텁고 싸움도 잘되지만, 안 될 때는 집도 없고 곤마만 많고 갈수록 태산이다. 지금 우리 당이 그렇다. 그래서 엄청난 승부수를 둬야지. 보통 승부수로는 안 되고, 상상도 못할 엄청난 강수로 가야지. 어떤 강수인지는 내가 둘 수도 없고 둘 처지도 아니지만…. (강수는 반발과 저항도 그만큼 셀 수밖에 없지 않나?) 결국 사람의 문제니까, 상대가 있으니까 강수가 쉬운 건 아니지. 하지만 이렇게 “네, 네”로 끝날 문제는 아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회’의 수술이 충분했다고 보나.

○ 미흡했지. (한국당 지도부는 뼈를 깎았다고 하는데?) 그건 자체 분석이고…. (뭐가 가장 큰 문제였나?) 너무…,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부분(사람들)이 너무 세…. 누군가 좀 균형을 잡고 이끌어나갈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인물이 없는 것 같다. 너무 안에서만 싸워. 작년부터 그랬지만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 거야. 여태까지 그러고 있고. 크고 작은 걸 떠나서…. (예상하지 못했나?) 진짜 이렇게 될지는 몰랐지…. 이럴 줄 알았으면…. 수읽기를 잘못한 건데, 하하하. 적은 밖에 있는데 왜 안에다 서로 총질을 해? 작년부터 계속 악수만 두는 거야. 그러니 이길 수가 있나. 지금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고. 모두 화해하고 하나로 뭉쳐야 하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뭐 하나 결정하려고 하면 사분오열이야. 이해관계 때문에…. 그럴 때 리더가 중심이 돼 이 길로 가야 한다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중심을 잡아줄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강수가 필요하다는 거지.

봉위수기(逢危須棄·위기에 처한 돌을 모두 살리기보다 일부를 버리고 만회를 꾀한다). 모든 돌을 살릴 수는 없다. 사석이라 판단하면 아프더라도 버려야 한다. 육참골단(肉斬骨斷·내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 나는 그럴 용기가 있는가…. 무엇이 사석인가.

아직도 당 지지층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지지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사석인가, 아니면 살려야 할 돌인가.

○ 어려운 문제인데…. 바둑으로 치면 끌고는 가야 하지만 내세울 수는 없는 상황이 아닐까. 지난해 총선,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제대로 읽는다면…. 새 인물, 새 변화가 필요하겠지.

핵심 친박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정치를 내가 잘 모르지만, 자신들의 희생이 좀 따라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 보인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뭔가 정해지면 좀 해줘야 하는데…. 모두의 입맛에 맞는 방법이 지금 있겠나. (자신이 친박 아닌가?) 친박은 친박이지. 처음에는 대부분 친박 아니었나. 내 스스로 친박이 된 것은 아니고, 원유철 전 원내대표 때문에 묶여서… 친원인가? 하하하(그를 비례대표로 끌어들인 사람이 원 전 원내대표다). 그래서 친박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정치가 적성에 맞나?) 나는 안 맞지. 나는 아니야.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여기서 일가를 이루기도 힘들고. 아직도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보다는 국수로 불리고 싶은 거지. 그게 듣기가 좋지. 그래도 의원인 동안은 내 역할은 다하고 싶다.

선거 승리를 위해 정치에 문외한인 유명인을 영입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 솔직히 작년에 알파고 아니었으면 영입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을 거야. 작년이 2002년 월드컵이었으면 아마 허정무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됐겠지(허 전 감독은 지난해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신청했다). 현실적으로는 정당도 선거를 해야 하니까 영입 경쟁을 할 수밖에 없고, 또 어려서부터 정치를 배운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결국 어떤 분야에 있다가 들어오는 것이니까….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까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회에 진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처음 발의한 법안이 역시 바둑진흥법 제정안이다.

○ 바둑 진흥을 위한 기본 계획 수립, 바둑 지도자와 바둑 단체를 위한 지원 방안 등을 담은 것인데…. 우리의 전통문화이자 세계적인 위상을 떨쳤던 바둑의 발전을 위해 발의했다. 지난해 8월에 대표 발의했는데, 통과되는 데 쉽지 않다. 밖에서 볼 때는 올리면 에스컬레이터처럼 쭉 올라가서 땅땅 때리면 통과되는 줄 알았는데, 탄핵에 대선에 큰일이 많이 벌어지다 보니 자꾸 늦어지더라. 18대 국회부터 추진된 것인데…(발의된 법안이 해당 국회 임기 내에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꼭 통과됐으면 좋겠다.

정치인 조훈현은 몇 수 앞까지 보이나.

○ 이제 겨우 초보인데…. 바둑으로 치면 죽고 사는 것과 간단한 정석을 아는 정도? 하수지. (정작 정치 고수들은 엄청난 강수가 필요하다면서도 그럴 의지는 없는 것 같다.) 하수도 그 수가 보이는데…. 이 (정치)고수들은 왜 그 얘길 안 하는 건지. 물론 자기 입장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바둑 10훈에 ‘조이구승자 필다패(躁而求勝者 必多敗)’란 말이 있다. 조급하게 이기려고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급하게 하지 말고 속도를 지키면서 했으면 한다. (프로기사 시절 별명이 행마가 빠르다고 해서 ‘제비’ 아니었나.) 빨랐지. 빨랐다. 그래서 창호(이창호 9단)한테 잡혔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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