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1시경 덴마크 올보르의 정유라 씨 집 앞에 하얀 BMW 차량이 들어섰다. 한 한국인 여성이 내리더니 집 문을 두들겼다. 한눈에 봐도 어려 보이는 이 여성은 몸매가 드러나게 딱 붙는 점퍼를 입고 털모자로 얼굴을 꽁꽁 싸맨 상태였다. 평소 취재진이 찾았을 때는 절대 문을 열지 않았지만 이 여성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정 씨 아들의 보모로 추정되는 여성이 나왔다. 둘은 문을 사이에 두고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정 씨 바로 앞집에 사는 주민 비비 씨는 10일(현지 시간) 본보에 마지막으로 본 정 씨 일행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했다. 이후 집 안에 있던 보모와 정 씨 아기는 자취를 감췄다. 정 씨 일행이 집을 비우는 과정에서 목격된 ‘어리고 마른 한국 여성’은 그동안 정 씨 조력자로 알려진 20대 남성 2명이나 중년 여성인 보모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비비 씨는 “평소 기자들이 오면 그 집에선 절대 문을 안 열어주는데 이 여성이 오자 바로 안에서 문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이 여성의 정체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이 타고 왔다는 하얀 BMW는 최순실 씨 일가가 독일에서 자주 타고 다녔다고 교민들이 주장하는 차량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정 씨의 새로운 조력자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 여성이 집을 찾아오기 5시간여 전인 오전 7시 30분∼8시에는 말이 들어갈 만큼 큰 검은색 동물 운반용 트레일러가 집 앞에 섰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1시간여에 걸쳐 집에 있던 짐과 함께 평소 집에서 키우던 개와 고양이 여러 마리를 모두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정 씨가 독일에서 타고 왔고 늘 집 앞에 주차돼 있던 폴크스바겐 밴도 누군가가 운전해 함께 떠났다.
일각에서는 이 여성이 구치소에 구금돼 있는 정 씨 아니냐는 추정까지 나왔다. 이번 이사는 정 씨 일행이 매일같이 집을 찾는 취재진 때문에 사생활을 침해받고 있다며 덴마크 아동복지부서에 새 거처로 옮겨 달라고 요구해 이뤄진 만큼 인도주의가 강한 덴마크 정부가 정 씨 일행이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워할 수 있는 아기를 잠깐이나마 볼 수 있게 배려해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올보르 구치소 관계자는 “정 씨의 아기가 정 씨를 보러 면회를 올 수는 있어도 정 씨가 아기를 보러 나갈 수는 없다”고 부인했다.
정 씨 일행이 은신처를 빠져나간 다음 날인 11일 오전에는 하얀색 방역복을 입은 청소업체 직원들이 대형 트레일러를 단 차량 등 2대를 몰고 와 집을 청소했다. 이들이 집 안을 정리하며 내다버린 검은색 대형 쓰레기봉투는 20여 개에 이르렀다.
정 씨 일행은 뜯지도 않은 음식과 새것과 다름없는 옷을 버려두고 집을 빠져나왔을 만큼 급하게 몸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봉투를 열어보니 멀쩡한 새 라면 50여 개와 미역, 가다랑어포, 즉석카레 등 한국 식품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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