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아주 고약한 귀국 선물’…동생·조카 뉴욕서 뇌물혐의 기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1일 16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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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전 총장 귀국행 비행기 타기 전날 터진 악재, 한 소식통 “아주 고약한 귀국 선물”
미 법무부, “공범이 뇌물 착복한 배신 사건. 도둑들 사이엔 어떤 명예심도 없다” 일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73)이 총장 10년 임기를 마치고 뉴욕발 서울행 귀국 비행기(12일)를 타기 바로 전날인 10일(현지 시간) 그의 동생 반기상 전 경남기업 고문(71)과 조카 반주현 씨(39)가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미 언론들은 일제히 "전직 유엔 사무총장의 친척들, 거액 뇌물죄로 기소"라는 제목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고, 미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공범자의 배신이 있었다. 도둑들 사이에 명예심이 없다는 격언을 입증한 사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반 총장 측 사정에 밝은 뉴욕의 한 소식통은 "(미국 사법당국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반 전 총장의 귀국 바로 전날 아주 고약한 선물을 받은 셈"이라며 "12일 뉴욕 JFK 공항에서의 환송 분위기도 썰렁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를 감안한 듯 반 전 총장은 당초 예상과 달리 공항에서 별도의 간담회 행사를 갖지 않고 환송 나온 인사들과 악수만 하고 비행기를 탈 예정인 것으로 전했졌다.

공소장과 미 법무부 보도자료 등에 따르면 2013~2014년 당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경남기업은 그 타개책으로 베트남에 있는 72층 복합빌딩 '랜드마크 72'를 매각하려 했고 이를 성사시키려고 반 전 고문과 그의 아들인 주현 씨가 중동 국가(카타르)의 한 관리에게 뇌물로 50만 달러(6억 원)를 건네려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실제로 이 관리의 대리인임을 자처한 예술·패션 분야 컨설턴트 말콤 해리스(52)에게 50만 달러를 전달했으나 해리스는 이 돈을 착복해 뉴욕 브루클린의 고급아파트 펜트하우스 렌트 비용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매각 주간사였던 미국 부동산 투자회사 '콜리어스 인터내셔널'의 이사였던 주현 씨는 해리스와 문자메시지와 e메일 등을 통해 이 문제를 협의하면서 뇌물을 표현할 때 '장미(roses)'라는 암호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중동 관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해리스는 마치 그 관리로부터 매각 관련 내용을 전달받은 것처럼 e메일을 꾸며 주현 씨에게 전달했고, 주현 씨도 매각 건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꾸민 서류나 e메일을 경남기업 측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공소장은 밝혔다.

반 전 고문과 주현 씨는 뇌물 50만 달러를 선수금으로 전달하고, 건물이 희망가격인 9억 다러(약 9600억 원)에 팔리면 추가로 200만 달러의 뇌물을 지급할 예정이었다.

반기상씨 부자는 2014년 4월, 선불로 50만 달러를 주고 매각 성사 여부에 따라 별도의 2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해리스와 합의했다고 공소장은 밝혔다.

레슬리 콜드웰 미 법무부 형사담당 차관은 이날 "2명의 피고인(반기상 반주현)이 정부 관리에게 뇌물이 줘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공범(해리스)에게 사기를 당했다. '도둑들 사이에 어떤 명예심도 없다'는 격언을 입증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또 "뇌물 수수는 경제의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라고 밝혔다. 이들 3명 외에 '우상(존 우·35)'이라는 인물도 기소됐으나, 구체적 혐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날 주현 씨는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에서, 우상이란 인물은 뉴욕 JKF 공항에서 체포됐고, 반 전 고문과 해리스는 수배 상태라고 미 법무부는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주현 씨와 우상은 검거 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라고 전했다.

반 전 고문과 주현 씨가 재판을 통해 유죄가 확정되면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들에게 적용된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는 최고 징역 5년, 돈세탁 혐의만으로도 최고 징역 20년 선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해 10월 서울북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박미리)는 주현 씨가 고 성완종 회장의 경남기업을 상대로 계약 서류를 조작한 불법 행위의 책임을 지고 59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경남기업 법정관리인이 주현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에 앞서 2015년 5월 경엔 고 성완종 회장 측이 랜드마크72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반 전 총장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주현 씨는 "경남기업 측으로부터 (큰아버지 반 총장에게) 청탁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버지(반기상 전 고문)에게 그 얘기를 꺼냈다가 되레 호통만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경남기업의 성 회장은 반 전 총장의 영향력이 행사되기를 희망됐으나 그 로비가 실제로 반 전 총장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는 얘기였다.

당시 반 전 총장도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 건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동생과 조카가 (불미스럽게) 연루된 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태도를 보였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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