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장자리 나눠먹겠다고 ‘피의 각서’ 쓴 기초의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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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군(郡)의원들이 군의회 의장 자리를 놓고 ‘피(血)의 각서’까지 쓰며 담합한 사실이 드러났다. 손태영 의원을 비롯한 의원 6명이 2014년 7월 손 의원을 2년 후 임기 후반기 의장으로 밀어주기로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1억 원을 손 의원에게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문법에도 맞지 않는 ‘각서합니다’라는 제목의 문서에다 손 의원의 손가락을 찔러 나온 피를 섞은 인주로 지장까지 찍었다니, 조폭 수준의 막장 행태다.

전남 여수시의회와 고흥군의회에서는 의장 선거를 둘러싼 표 매수 의혹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북 구미시의회에서는 현직 의장을 연임시키기 위해 인증 샷을 찍은 의혹이 제기됐다. 지방의회 후반기 의장단 구성 시기에 드러난 기초의회의 추태와 비리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기초의원의 자질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991년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지만 2006년 유급제로 바뀌고도 겸직을 가능하게 두는 바람에 의원직을 악용해 자신의 사업이나 이권에 개입해 물의를 빚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열악한 지방 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외유(外遊)를 다니는가 하면 공무원에게 상전처럼 고압적으로 군림하는 등 국회의원 뺨치는 안하무인의 권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기초의원들에게 올해 1인당 평균 의정비 3767만 원, 각종 경비까지 합쳐 1인당 평균 5000만 원 이상의 혈세를 쓰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기초의회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상과 거꾸로 가자 2014년 12월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서울과 6개 광역시의 기초의회를 없애는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국회의원들의 반발에 흐지부지됐고, 2012년 대선에서도 여야 후보 모두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내걸었으나 역시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없었던 일이 됐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기초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 원칙이다. 차제에 기초의회 폐지 여부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의령군#담합#손태영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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