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與, 유권자를 뭘로 보기에 ‘비박 살생부’ 논란 나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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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현역 의원 40여 명이 공천 물갈이 대상이라는 ‘살생부(殺生簿)’ 진위를 놓고 여권 계파 다툼이 막장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의 이한구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은 공천 살생부가 있다는 의혹에 어제 “3김 시대 음모 정치의 냄새가 난다”며 당 공식기구의 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친박(친박근혜)계 김태흠 의원도 같은 날 “김무성 대표가 친박 인사로부터 살생부를 받았는지 경위를 밝히라”며 “마치 청와대와 친박계가 공천에 개입하려는 듯한 인상을 줬다”며 사태에 책임을 지라고 주장했다.

살생부 논란은 26일 비박(비박근혜)계 정두언 의원이 “전날 김 대표 측근을 만났더니 ‘김 대표가 친박 핵심으로부터 현역 의원 40여 명의 물갈이 명단을 받았다’고 했고, 거기엔 나도 포함됐다”고 말하면서 불거졌다. 김 대표는 27일 김학용 대표비서실장을 통해 “물갈이 요구를 받은 적이 없고 정 의원과는 정치권에 회자되는 이름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을 뿐”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도 명단에 자신이 포함됐다는 얘기를 김 대표 측근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2008, 2012년 총선 때도 여당에선 살생부가 나돌았다. 2008년엔 당시 비주류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공천이 잘못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지만 공천 후 “(당 안팎의) 살생부와 비슷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결국 공천 탈락 후보들이 ‘친박연대’라는 신당을 급조해 선거를 치렀고 살생부를 주도한 이방호 사무총장 등은 낙선해 ‘민의의 심판’을 받았다. 2012년에는 친박계가 칼자루를 잡고 친이(친이명박)계 다수를 공천에서 배제했다. 이런 과거가 있으니 이번에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이 나오고 반대쪽에선 ‘자작극’이라는 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살생부 괴담이 나도는 것만으로도 새누리당은 맹성(猛省)해야 한다. 나라는 안보위기, 경제위기라면서 이념적 차이도 두드러지지 않은 집권 여당에서 계파 공천 다툼을 벌이는 것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오만한 자세다. 이 위원장은 “나를 우습게 보지 않으면 물갈이 명단 같은 소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국민 눈 밖에 난 정치인을 솎아내는 대신 대통령과 당 안팎의 권력자들 눈 밖에 난 의원들을 쳐낸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우습게 보는 일이 될 것이다. 여당 공천에 대한 평가는 국민이 총선에서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살생부#새누리당#한나라당#유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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