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김정은이 설마 핵을 쏘겠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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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미국 조야에서 대북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전인 지난해 10월 20일에도 미 외교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상원 외교위원회 대북정책 청문회에서는 공화 민주 의원들 공히 정부의 무기력함을 질타했다. 밥 코커 위원장은 “비참한 실패(abject failure)”라며 “아무런 변화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도 북핵 실험 직후 동아시아재단에 기고한 글에서 “역대 미국의 대북 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평했다.

외교현자 키신저의 혜안

중국이 북핵에 대해 능동적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역할은커녕 중국은 오히려 우리를 얕잡아보는 말들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5자회담 제안을 한나절도 못 가 반대 성명을 내 국제사회에서 우습게 보이도록 만들더니 관영매체 환추시보를 통해서는 ‘한국은 미국의 바둑알’ ‘너무 제멋대로’ 운운하며 깔보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우다웨이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가 평양으로 갔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할 것이다. 김정은은 그의 방북 당일 보란 듯이 위성 발사 계획을 통보해 망신을 주었다.

‘외교의 현자(賢者)’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일찍이 2009년 5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된다면 정권이 무너진다”며 “그들이 핵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했다. “미국 중국이 알아서 해 주겠지” “김정은이 설마 핵을 쏘겠어?” 같은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과연 우리 군은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혹시나 해서 국방부 전현직 장성들을 두루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솔직히 맥이 빠졌다. 결론적으로 북핵이 실전 배치되면 군의 대응 수단이 미미하다는 거였다. 인공위성이 없으니 미국 도움 없이는 핵실험이나 핵 공격을 사전에 인지할 수도 없고 인지한다 해도 이동식발사대로 움직이면서 쏘는 미사일에 마땅한 방책이 없다는 거였다.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실전 배치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첨단 무기 전문가인 국방부의 한 장성은 “핵도 무섭지만 생화학전도 무섭다. 무인기로 생화학무기를 싣고 날아와 서울 도심 같은 인구 밀집지역에 떨어뜨리면 증거를 찾기도 어렵고 치명적 피해가 예상된다. 북한이 무인기 도발을 계속하는데도 처벌받은 지휘관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큰 문제는 군 스스로의 대북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거였다. 한 퇴역 장성은 “북핵 도발 며칠 전 국방부 고위 간부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여러 정황상 북한이 수소폭탄 도발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더니 ‘괜한 걱정이다. 핵무기 소형화는 아직 멀었고 미사일 실험도 과장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 오히려 말한 내가 뻘쭘했다”며 “며칠 뒤 실제 상황이 벌어진 걸 보면서 나조차도 우리 군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홀로서기 두려워하면 깔본다

툭하면 남의 눈치나 보면서 홀로서기를 겁내는 사람은 존중받을 수 없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려는 용기와 결기가 있어야 상대도 우리를 존중한다. 핵무장론은 단지 두려움이나 분노에서 나오는 감정적 대응이 아니고 중국을 압박하고 북핵에 맞서며 한미동맹을 견인하는 국제정치적 선택이라는 통찰에 근거한다고 기자는 믿는다. 우리 안보를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자주국방의 굳센 의지를 보여주자.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김정은#북핵#대북정책#헨리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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