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美, 남의 나라 국가원수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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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수장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이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 차관의 한중일 과거사 관련 발언에 대해 “얼마나 미국이 (우리를) 얕잡아보고, 우습게 봤으면 그런 식의 발언을 하겠나”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했다.

정 전 장관은 3일 S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참 기가 막힌 일이다. 우리나라 외교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장관, 부장관에 이어 미국 외교를 총괄하는 미 국무부 서열 3위인 셔먼 차관은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워싱턴 싱크탱크인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가 개최한 ‘미 정부의 동북아 정책’ 세미나에서 한중일 과거사 논쟁과 관련해 작심한 듯 “이해는 가지만 실망스럽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민족 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그러나 이는 진전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에서) 마비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정 전 장관은 “‘민족주의 감정을 이용해서 누구를 공격하면 값싼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대통령 후보가 그런 얘기 하나? 물론 외교부 장관은 그런 얘기를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며 셔먼 차관의 발언이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우리 정치 지도자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그런 발언을 하면 값싼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거다’하는 얘기가, 남의 나라 국가원수나 정치 지도자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그런 표현을 쓰겠나”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특정 국가나 지도자를 겨냥한 발언이 아니다’라는 미국 측 해명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아니긴 뭐가 아닌가.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인데, 그게 특정 국가를 지정한 게 아니라면 어디 저 태평양에 있는 무슨 섬의 국가를 상대로 했단 얘기냐”면서 “말이 안 되는 거다. 이게 복잡해지니까 변명을 하고 도망가는 거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의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며 그 배경과 관련해 “중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동북아 지역,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에 도전하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을 미국 편에 끌어들여 이른바 반중(反中) 통일전선을 결성해야 한다”며 “그런데 한국 중국이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대화도 안 하려고 하니까 미국으로서는 차질이 생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셔면이 작심하고 치고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아베의 방미를 앞두고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일본의 양보도 얻어내고 한·미·일 반중통일전선을 확실하게 구축하자는 계산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과거사 논쟁에서 발을 빼라고 요구하는 대상은 한국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이 미국 대리인 비슷하게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걸 뻔히 아는데 중국이 빠지겠나? 그래서 중국은 더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일본의 힘 빼기를 한다”며 “우리보고 빠지라는 거다”라고 밝혔다.

작년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서 위안부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립서비스”라면서 “(미국 정부의) 본심은 셔면이 얘기를 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립서비스를 하고,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외교”라고 지적했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이 국회에 출석해 “미국 측에서 과거에 밝혀온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는 것을 1차적으로 확인했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잘못했다. 미국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정 전 장관은 ‘한일관계 악화는 한국이 과거사에 집착한 탓’이라는 일본 측 주장이 서서히 먹히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일본이 그런 점에서 미국을 자기편을 잘 만들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부의 대처와 관련해선 “‘과거사 문제는 일본이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미국과 일본에 단호하게 얘기해야 한다”며 “2차대전 이후 독일 정부가 나치에 대해 했던 것 같은 식으로 확실하게 사과하고, 보상할 게 있으면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미국이 이런 식으로 편들면 안 된다는 얘기도 우리 정부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정부뿐 아니라 일본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얘기를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그런 점에서 중국과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해식 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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