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총리인준도 여론조사로 하자는 문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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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표 “결과 승복” 靑-與에 제의… 與 “대의민주주의 원칙 부정”
16일로 미룬 이완구 인준 신경전

2002년 대선 막바지에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로 정권을 잡은 뒤 주요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를 의사결정의 도구로 삼아 온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에는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여론조사로 하자고 해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13일 이완구 총리 후보자 인준 여부를 두고 ‘여야 공동 여론조사’를 불쑥 제안했다.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 의사일정을 16일로 미룬 지 하루 만의 일이다. 새누리당은 “여론조사로 총리를 뽑자는 것이냐”며 강력 반발했다. 많은 전문가도 국회의 고유 의무를 방기(放棄)하려는 반(反)민주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13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만약 우리 주장(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을 야당의 정치 공세로 여긴다면 여야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하기를 청와대와 여당에 제안한다”며 “결과에 승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곧바로 “야당 대표가 하루 만에 말을 바꾼 것은 정말 유감스럽다”며 여야 합의대로 16일 본회의 표결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도 “헌법상 총리 임명동의안은 본회의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국회가 국민을 대표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한 것(의회민주주의)을 원천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전문가들은 초헌법적 발상인 ‘여론조사 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 청문회 제도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대상자를 직접 검증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국회의원들에게 해당 역할을 맡긴 것”이라며 “여론조사를 ‘전가의 보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 “표결 등 절차 무력화… 국회 존재이유 없어” ▼

문재인 제의 논란


신율 명지대 교수도 “국민의 여론은 존중해야 마땅하지만 정치 지도자의 정책 결정 기준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총리 인준을 여론조사에 의존할 거면 국회의원을 뽑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보도자료에서 “문 대표의 발언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여론조사 정치’가 총리 후보자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 등 정치적 제도 및 절차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여론은 피상적인 국민의 정서를 드러내는 것으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도출하는 ‘공론(公論)’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라며 “정치가 시스템 내에서의 결정 기능을 상실한 채 들쭉날쭉 나타나는 여론에 끌려간다면 국정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여론조사의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점도 ‘여론조사 정치’의 한계로 지적된다. 이 후보자의 인준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총리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나’와 ‘총리를 잘할 수 있다고 보나’ 등 질문에 따라 답변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평균 10%대 초반에 그치는 저조한 응답률도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요소다. 김상욱 성균관대 교수는 “공정하고 체계적인 여론조사가 쉽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선 여론조사를 만능이라고 생각하고 맹신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기 대권 주자인 문 대표가 충청권 표심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이사는 “문 대표의 여론조사 제안은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1위라는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 후보자의 총리 적합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불과 보름 사이에 부정 평가가 약 20%포인트나 늘었다. 13일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부적합’ 의견이 20%, ‘적합’이 39%였다.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첫날인 10일부터 사흘간 한 조사에선 ‘부적합’이 41%로 늘었다. ‘적합하다’는 29%였다.

배혜림 beh@donga.com·홍정수 기자
#총리인준#여론조사#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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