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론조사로 총리 인준하려면 국회가 왜 필요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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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어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과 관련해 “우리 주장(자진 사퇴)을 야당의 정치공세로 여긴다면 여야 공동 여론조사를 의뢰하자”고 청와대와 여당에 제안했다. “국민은 국격에 맞는 품격 있는 총리를 원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국민을 끌어다대고 있지만 너무 속 보이는 발언이다. 하필 같은 날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적합’ 의견(41%)이 ‘적합’(29%)보다 높게 나왔다. 충청 출신 총리를 원하는 충청권 민심에 맞서지도 못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지도 못하는 자신의 리더십 결핍을 감추려는 비겁한 술수로 보인다.

총리 인준 같은 중대사를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면 정당은 왜 필요하고, 국회는 왜 존재하는가. 현대국가는 대의민주주의를 통치의 기본원리로 삼고 있다. 수천 년 전 도시국가와 달리 지금은 직접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그런 식이라면 국가여론조사처를 만들고 국회를 해산해도 괜찮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고 국회 동의를 거쳐 임명하기까지의 모든 권한과 절차는 헌법과 국회법에 근거한 것이다. 문 대표는 법률가 출신에다 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다. 130석의 국회 의석을 가진 제1야당 대표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함부로 하는 것은 경솔하기 짝이 없다.

새정치연합은 그제 새누리당과 이 후보자에 대한 인준 문제를 16일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정상적인 인준 절차를 밟는다는 동의가 전제돼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문 대표의 발언은 하루 만에 합의를 뒤집는 것으로 정치 도의에도 어긋난다. 국무총리 인준 표결권은 국회의원의 권리이자 의무다. 자신들이 기권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자유지만, 다른 정당의 표결까지 저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여론을 중시하는 것과 여론조사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다르다. 여론조사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것도 정당정치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문 대표 발상대로라면 공무원연금 개혁안처럼 야당이 내켜하지 않는 사안들도 여론조사에 따라 처리하면 그만이다. 과거 국민 다수가 찬성하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야당이 반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차라리 문 대표 자신이 야당 대표로 적합한지 여론조사에 부쳐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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