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로 결정하는 FX사업, 최선인가 안보자충수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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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차세대 전투기로 도입하는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A 스텔스기의 구매 가격을 50% 더 주는 것을 감수하면서 자국 기업이 쓰는 부품을 쓰기로 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엔진통풍기와 터빈, 레이더 신호 수신기 등 부품 24개를 미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 일본 기업에서 생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F-35 공동 개발국은 아니지만 F-35A 42대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일본 기업이 최대 40%까지 부품 제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액을 들여서라도 최첨단 스텔스기 관련 기술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로켓 개발 과정에서도 외국 제품보다 최고 20배나 비싼 국산 부품을 고수해 완전 기술 자립을 이뤘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정부의 3차 차세대전투기(FX) 사업은 일본과 극명히 대조된다. 8조3000억 원을 들여 첨단 전투기 60대를 도입하는 이 사업은 2년여간의 시험평가와 협상 절차를 거쳐 미국 보잉의 F-15SE 채택 여부로 결론 나게 됐다. 군 당국은 다음 달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주관하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F-15SE를 FX 단독후보 기종으로 상정할 계획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방위사업청이 실시한 FX 사업의 가격입찰에서 3개 후보기종 가운데 F-15SE만 총사업비 내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F-15SE와 경쟁한 F-35A와 유로파이터(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는 총사업비를 초과했다. 현 국가계약법상 총사업비를 넘은 기종은 성능과 기술이전 조건 등이 포함된 종합평가에서 1위를 해도 계약 대상에서 제외된다. 결국 한국의 FX 사업은 가장 저렴한 가격을 써낸 기종으로 결정되는 셈이다.

하지만 도입 후 20∼30년간 국가안보의 핵심 전력이자 전략무기로 활용될 FX 기종이 가격으로 결정되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이 앞다퉈 5세대 스텔스기 도입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F-15SE는 주변국의 스텔스 전력을 견제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1970년대 개발된 4세대 기체에 내부무장창을 설치하고, 스텔스 도료를 칠해서 제대로 스텔스 성능이 발휘되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F-15SE는 시제기조차 생산되지 않아 이런 의구심은 더 증폭되고 있다.

아울러 FX 사업의 근본 취지가 어그러졌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FX 사업의 당초 목표는 북한과 주변국의 안보위협을 억지할 스텔스 기능의 최첨단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김관진 국방장관과 이상우 전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 등도 스텔스기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은 FX 사업 추진 과정에서 스텔스기 성능 조건을 크게 완화했다. ‘문턱’을 낮춰 여러 기종이 참여해 경쟁체제를 유지해야 가격협상 등에서 최대한 실리를 챙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업 막바지인 지금 FX 사업은 ‘가격’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구조가 돼 버렸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3개 기종 모두 FX 요구 성능을 충족했고, F-15SE는 가격 조건까지 수용한 것”이라며 “F-15SE를 FX로 선정할지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정된 예산과 관련 규정 등을 고려할 때 어떤 기종이 FX로 결정돼도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F-35A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쟁 기종보다 무장능력이 떨어지고, 적기 도입이 불투명한 데다 실전 검증이 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모의공중전에서 유로파이터가 F-35와 같은 스텔스기인 F-22를 제압하면서 스텔스기가 만능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럼에도 머지않아 주변국들의 스텔스기 실전 배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만 4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는 것은 ‘안보 자충수’라는 반론이 나온다.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복지 분야에 많은 예산을 쓰면서 국가 생존과 직결된 전략무기 도입에 너무 인색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20년대 초까지 집행될 FX 사업 예산은 올해 주요 복지지출 사업인 전세자금 보증 규모(13조2000억 원)의 62% 수준에 그친다.

국방예산이 보건복지노동 예산보다 증가폭이 너무 낮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국방 예산(34조4970억 원)은 지난해보다 1조5000억 원(4.7%) 남짓 늘어난 반면 보건복지노동 관련 예산(97조4000억 원)은 전년보다 4조8000억 원(5.2%) 증가했다. 국방 분야의 연간 사업비 증가 폭이 사실상 5% 이내로 묶여 주요 신규 사업이 보류되거나 연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는 FX 사업 예산의 현실성을 다시 따져보고, 국방 백년대계(百年大計) 차원에서 FX 사업의 최선의 결정이 무엇인지 냉철히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각에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FX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면 3, 4년 뒤 공군전력의 심각한 공백이 초래된다”며 “향후 스텔스기 도입을 위한 4차 FX 사업을 별도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손영일 기자·세종=홍수용 기자 ysh1005@donga.com
#F-35A#스텔스기#FX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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