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출금, 檢의 원칙대응? 국면전환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5일 03시 00분


■ 국정원장 퇴임직후 이례적 조치… 정치권, 파장에 촉각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출국을 금지한 것으로 24일 확인되면서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출국금지 조치가 특별한 일이 아니다”면서 “원 전 원장은 여러 건의 고소, 고발이 돼 있기 때문에 출국금지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은 지난해 대선 기간 인터넷 여론 조작을 지시하고 종북·좌파단체 척결 공작을 했으며 4대강 등 국책사업 여론 조작 등을 지시한 혐의로 시민단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의해 5건의 고소, 고발을 당했다. 지난해 대선 직전 불거진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도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체적인 혐의를 포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 전 원장의 출국을 방치했다가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009년 ‘한상률 게이트’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검찰은 엄청난 비난 여론에 직면한 바 있다.

정치권은 대체적으로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원 전 원장의 미국행이 보도된 직후 출국금지 조치가 이뤄지자 민주통합당 율사 출신 한 의원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비록 고소, 고발 사건에 여러 건 연루됐다 하더라도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 퇴임 직후 이처럼 신속하게 출국금지를 당한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재임 시 다른 문제가 포착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정치권의 검찰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 전 원장의 출국을 방치하면 야당의 미움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여야는 1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하면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나는 즉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잇단 인사 실패로 국정 운영에 빨간불이 켜지자 원 전 원장을 통해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교체 여론이 비등했을 때도 이 전 대통령은 꿈쩍하지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현 정부가 악화된 여론을 돌려 국정운영의 동력을 얻기에 충분한 상징성이 있으면서도 이전 정권의 핵심부까지 건드려야 하는 정치적 부담은 덜한 인물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원 전 원장의 서울 관악구 남현동 자택 앞은 24일 인적이 눈에 띄지 않았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찾은 원 전 원장의 집에서는 인기척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집 앞 골목길에는 회색 중형 승용차가 서 있었다. 동네 주민들은 “원 전 원장 부인의 것”이라고 했다.

한 전직 국정원장은 “왜 원 전 원장이 퇴임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출국하려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의아해했다. 국정원장은 퇴임과 동시에 3개월가량은 경호를 받도록 돼 있고, 납치 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퇴임 직후 외국에 가는 일이 없다고 한다.

한편 김영삼 정부 이래 10명의 국정원장(원 전 원장 제외, 국가안전기획부장 포함) 가운데 7명이 재직 시 문제로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3년 넘게 재임한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퇴임한 뒤 네 차례나 검찰에 기소됐다. 특히 ‘북풍사건’(1997년 대선 당시 안기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북한과의 연루설을 퍼뜨린 사건)과 관련해서는 실형을 선고 받았다. 권 전 부장의 전임자인 김덕 씨도 불법 감청팀인 ‘미림팀’ 운영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씨는 1999년 10월 이른바 ‘언론대책문건’ 유출 파문으로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후임자인 천용택 씨는 미림팀의 불법 감청 기록과 녹취록을 보관하면서 이를 활용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임동원 신건 씨는 국정원의 불법 감청을 묵인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임 씨는 대북 송금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원세훈#출국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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