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9시 반 국회 본관 2층 새누리당 대표실. 황우여 대표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해 “최고위원들이 논의할 사항이 있다”며 자리에 배석한 당직자들에게 나가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유기준 최고위원은 “버스가 12대 간다고 해서 한꺼번에 출발해야 하느냐. 한두 대 늦게 출발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타협안을 제시했다. 최대 쟁점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진흥정책 기능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을 놓고 여야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자 방통위 분야를 제외하고 정부조직법을 우선 처리하자는 내용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실질적 출범을 위해서는 정부조직법을 부분적으로 통과시키고, 방통위 기능 이관 문제는 추후에 민주통합당과 협상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당 지도부는 “절대 안 된다”고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원내 사령탑인 이한구 원내대표는 “하나(방통위의 기능 이관)를 떼고 다른 것(정부조직법)을 통과시키면 (미래부는) 아무것도 안 된다”며 “(방통위 관련 여야 협상은) 영원히 사장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면은 새누리당 지도부의 강경한 내부 기류를 그대로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미래부는 ‘근혜노믹스’의 아이콘인 만큼 방송과 통신을 융합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핵심 구상을 집권 여당으로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비공개 회의 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회의 분위기는 더는 민주당과의 협상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현재 당내에서 협상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황 대표와 이 원내대표,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3명이다. 최근까지 이 원내대표와 김 수석부대표가 러닝메이트로 협상을 진행했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황 대표가 가세한 것이다.
그러나 황 대표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는 못하고 있다. 법 개정 사항은 원내대표 소관이기 때문에 당 대표가 개입할 명분이 적은 데다 원칙파로 분류되는 이 원내대표가 협상 실권을 잡고 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당내에선 황 대표와 이 원내대표의 협상 스타일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다소 서먹한 관계라는 관측도 나온다. 황 대표는 주변에 “여야 원내대표들끼리 눈빛이 서로 맞아야 협상이 잘 되는데…”라며 답답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협상 당사자인 3인 모두 기본적으로 방통위 기능의 미래부 이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관철을 위해 “민주당의 발목잡기로 박근혜 정부의 정상적 출범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연일 강조하며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당 지도부의 이 같은 강경 기류에는 궁극적으로 ‘국민 여론은 우리 편’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장기 표류로 국정 공백이 가시화되고 여권의 정치력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2월 임시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인 5일을 협상의 마감 시한으로 설정하고 민주당을 압박하는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을 펼쳐도 명분은 여당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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