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묶인 박근혜정부]‘전교조 법외노조화’가 勞-政갈등 첫 뇌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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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없다.”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렇게 논평했다. 민노총은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온시한 군사독재정권 시대로 돌아간 듯하다”라고 비난했다. 민노총뿐 아니다. 상당수 노동 전문가들 역시 표현의 강도는 약하지만 새 정부의 ‘노동 실종’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는 인수위원과 내각 선정 과정에 노동 관련 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고됐다는 평이다. 인수위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된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시 주 전공은 노동이 아닌 고용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사측의 손해배상소송(약 158억 원)에 항의하며 노조 간부가 목숨을 끊었고 ‘시신농성’이 벌어졌다.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해고 근로자들이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시작한 철탑 고공농성은 27일로 100일을 맞는다. 역시 해고자 복직을 위해 2007년 12월 시작된 재능교육 노조의 농성은 26일로 1895일째를 맞아 비정규직 최장기 투쟁을 기록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 2명의 고공농성도 다섯 달간 이어지고 있다.

‘노동 없는’ 인수위는 이런 현안 해결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21일 국정과제 등을 통해 ‘비정규직 차별 해소’ ‘대화와 상생의 노사문화 구축’ 같은 원칙을 밝혔지만 정작 지금까지 이를 뒷받침할 ‘결단’은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일부 노조의 과격한 투쟁 방식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개별 사업장 현안에 정부나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에 대한 부작용 우려도 크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악법도 법이다. 문제가 있으면 합리적으로 바꿔 가면 되는데 일부 노조의 막무가내 식 행보는 문제”라며 “타협 여부를 떠나 대외적으로 법과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 준 박 대통령이나 정부의 행보는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간담회를 열고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가 필요하다. 합리적 노사관계를 위해 한국노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각별히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간담회에서는 “앞으로 경총과 한국노총, 두 단체와 노동문제를 함께 협의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노총에 대한 언급은 물론 만남을 위한 시도조차 없었다. 사실상 노동 관련 대화 상대에서 배제된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법무법인 시민의 김선수 대표변호사는 “민노총을 거들떠보지 않고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며 “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대화) 파트너로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서 고용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법외노조화를 들고 나온 것은 뇌관을 건드린 격이었다. 고용부 내부에서조차 “지금 시점에 사전 교감 없이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규약 개정이라는 해묵은 문제를 꺼낸 이유가 의아하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민노총은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문제 등 5대 현안을 제시하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정부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앞으로 고용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절차 이행 여부, 다음 달 20일 예정된 민노총 임원 선출 등이 노정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조타수’가 될 고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오랜 기간 연구원에서 고용 분야만 연구해 온 학자가 노정 갈등의 험한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만약 노정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노동계가 극한투쟁으로 치달아 새 정부에 치명적 상처를 입힐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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