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몇 남지 않았다, 5년차 ‘정치적 동지’ 없는 청와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7일 03시 00분


요즘 이명박 대통령은 부쩍 노여움을 자주 드러낸다고 한다. 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선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처리’ 논란과 관련해 20여 분간 참모들을 쉬지 않고 질책해 아무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한 참석자는 “이 대통령이 올해 2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비판한 이후 이렇게 참모들을 심하게 야단치는 것은 처음 봤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최근 청와대 사정과 무관치 않다. 형인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데 이어 한일 정보보호협정 파문으로 핵심 측근인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도 자신을 떠난 상황에서 점점 의지할 데가 사라지는 데 대한 답답함과 괴로움에서 비롯됐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 대통령을 ‘홀로 남은 뒤 잔뜩 웅크린 채 상처를 핥는 사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실제로 요즘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권부(權府)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무기력증이 감지되고 있다. 자신을 ‘MB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집권 첫해인 2008년과 비교했을 때 청와대 내에 고위직 중 MB맨은 거의 사라졌다.

집권 초 청와대에는 류우익 대통령실장(현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곽승준 국정기획수석비서관(현 대통령미래기획위원장), 이동관 대변인, 박재완 정무수석비서관(현 기획재정부 장관),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등 이 대통령이 수시로 불러 국정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고위직 측근들이 즐비했다.

당시 류 실장은 1주일에 두세 번씩 이 대통령과 식사를 했다. 곽 수석은 퇴근 후 대통령관저로 쳐들어가는 경우도 잦았다. 곽 전 수석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 해법을 놓고 관저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목소리를 높여 직언도 드리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일이 별로 없다더라”고 전했다.

지금 청와대의 고위직은 대부분 직업 공무원이거나 전직 언론인 등 ‘관리형’으로 이 대통령과 깊은 정치적 인연이 없는 인사들이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허심탄회한 대화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집권 초기와 달리 저녁에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주로 관저에 머물며 김윤옥 여사와 식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 측근은 “현재 이 대통령과 그나마 대화를 나누거나 직언을 할 수 있는 청와대 인사는 장다사로 총무기획관,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 등 몇 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청와대와 비교해도 쓸쓸함이 더하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노무현 청와대는 문재인 비서실장, 이호철 민정수석비서관 등 친노(친노무현) 핵심들이 건재했다.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등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지금의 청와대에는 이른바 ‘MB식 가치’를 지키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내곡동 사저 터 논란에 대한 특검 등을 앞두고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선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는커녕 주로 한숨소리가 들린다. 한 관계자는 “농담조로 ‘이제라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주의를 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을 오래 보좌한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친 ‘정치 결사체’여야 하는데 MB 청와대는 대선을 앞두고 급조된 ‘이해관계 결사체’적인 측면이 있다”며 “현재의 무기력증은 거기서 기인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채널A 영상] 대통령 “측근 비리 없다” 외치더니…



#이명박 대통령#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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