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의 남자’였던 정두언, ‘형님’과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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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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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검찰 소환조사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에 대
해 “일종의 배달사고”라고 해명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저축은행 비리 연루 의혹에 대 해 “일종의 배달사고”라고 해명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대통령은 그해 10월 언론인들과의 저녁 식사에 측근들을 대동했다. 핵심 측근이었던 정두언 의원도 곁을 지켰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정 의원은 상 밑으로 다리를 뻗고 몸을 뒤로 젖힌 채 팔로 바닥을 짚었다. 대통령이 될 주군을 옆에 두고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었지만 정 의원의 표정은 편해 보였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 의원은 ‘왕의 남자’로 불렸다. ‘박근혜당’으로 불렸던 한나라당에서 이상득 전 의원, 이재오 의원과 함께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짜는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인수위가 갖은 구설에 휘말리자 책임론에 휩싸였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는 이상득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서명파동까지 일으키면서 그는 ‘형님’과 척을 졌다. 형님을 퇴진시키려는 ‘수유리 쿠데타’도 이재오 의원의 막판 변심으로 실패했다. 총선 이후 한나라당이 ‘형님당’이 되면서 그는 핵심 주류에서 소외됐다. 피는 물보다 진했다. 형님의 정적이 된 정 의원을 이 대통령도 감싸지 않았다. 형님에게 ‘항복’하고 미국으로 유배를 떠난 이재오 의원은 장관까지 지냈지만 그는 권력의 곁불조차 쬐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형님의 수하나 다름없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사찰까지 받았다.

‘친이계 핵심’에서 ‘쇄신파의 좌장’으로 변신한 그는 여당의 올해 4·11 총선 수도권 참패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이상득 전 의원은 각종 비리 의혹에 휩싸이며 총선에 불출마했다. 사람들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축은행 비리가 정 의원의 발목을 잡았다. 정 의원은 5일 검찰에 소환돼 2007년 대선 전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구속기소)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는다. 정 의원과 이상득 전 의원이 만든 대통령의 임기 말에 같은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정 의원은 2007년 대선 전 임 회장을 이상득 전 의원에게 소개해준 당사자라는 점을 인정했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벌어지기 이전의 상황이다. 정 의원은 “임 회장이 식사 자리에서 돈을 놓고 갔기에 (사람을 시켜) 돌려보냈는데 ‘배달 사고’가 났다. 사실관계를 다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주장의 사실 여부는 수사에서 가려지겠지만 권력의 단맛을 다 맛본 형님과 동급으로 다뤄지고 있는 현실에 정 의원은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혐의 입증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검찰은 두 사람의 악연이 수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이 임 회장 등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해 일부 시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임 회장을 소개한 정 의원도 자신과 관련한 혐의를 무조건 부인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신의 혐의를 덜기 위해 상대의 혐의를 발설하는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 전 의원의 진술은 정 의원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고 정 의원의 진술도 이 전 의원을 옥죌 수 있다. 지난 5년간의 권력 투쟁의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지 국민의 시선은 지금 서초동 검찰청사에 쏠려 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정두언#이상득#수유리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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