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오픈프라이머리 협공… 사면초가 朴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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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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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경선에 앞서 ‘룰의 전쟁’에서 고립되고 있다. 당내에선 비박(비박근혜) 진영이, 당 밖에선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연일 박 전 위원장을 압박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도 이들의 협공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태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기존 룰을 끝까지 고수할지 선택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박 원내대표는 1일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새누리당 내에서도 많은 분이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오직 박 전 위원장 한 분이 반대하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모든 의사가 무시되는 것 같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민주당도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박 전 위원장이 항상 침묵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오픈프라이머리를 공개적으로 ‘찬동한다’는 의사를 표시해주면 대단히 존경하겠다”고 박 전 위원장을 몰아세웠다.

전날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가까운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박 전 위원장을 제외한 모든 대선 후보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며 공세를 편 데 대해 박 원내대표가 호응하고 나선 셈이다.

김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고보조금을 받은 정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하에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의 발의에는 김태호 이재오 정두언 정몽준 의원 등이 참여했다. 박 원내대표가 “민주당도 동조하겠다”며 김 의원 추진 법안에 공개 지지를 선언함에 따라 박 전 위원장도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할 상황에 놓였다.

비박 진영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긍정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에 53.2%가 찬성했다. 반대는 30.3%였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39.4%가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에 찬성해 ‘현재 경선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43.4%)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지지율이 1%대에 머물고 있는 비박 후보들로선 오픈프라이머리가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얘기다.
▼ 친박 “사조직 판치고 돈선거 잡음 우려” ▼

오픈프라이머리가 미국에서 대세라는 점도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미국 51개 주(수도 워싱턴DC 포함) 가운데 21개 주에서 일반 유권자 누구나 예비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고 있다. 16개 주는 당원이나 지지 정당을 밝힌 유권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폐쇄형 예비선거(Closed Primary)’를 실시하고 있다.

나머지 14개 주의 예비선거 방식은 ‘부분 폐쇄형’이다. 이는 선거 당일 당원으로 등록하도록 요구하는 것인데, 곧바로 당적을 바꾸거나 버릴 수 있어 형식적으로는 폐쇄형이지만 실제로는 오픈프라이머리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미국의 51개 주 가운데 70%가량인 35개 주에서 경선을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박 진영은 친박(친박근혜) 진영의 불안감 달래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 논리가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안철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가 함께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면 야권이 민주당 후보를 먼저 정한 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다시 후보 단일화 이벤트를 펴기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특히 여야가 같은 날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도록 제도화하면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이 훨씬 예측 가능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더라도 어차피 지지율에서 월등히 앞선 박 전 위원장이 이길 텐데 굳이 반대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친박 핵심 관계자는 “룰을 어떻게 정하든 박 전 위원장이 이기는 것 아니냐”며 “나도 공개적으로는 오픈프라이머리에 반대하지만 솔직히 친박 진영이 꽉 막힌 집단처럼 무조건 반대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친박 진영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정당이란 공조직이 선거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 전 위원장의 측근 의원은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면 누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끌어오느냐가 중요해지면서 각종 사조직이 판을 치게 된다”며 “돈선거 등 온갖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고 경선 이후 논공행상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고민도 깊다. 비박 진영의 요구대로 경선 룰을 정할 경선 준비위를 구성하면 경선 일정이 엉클어지고, 경선 일정을 밀어붙이면 비박 진영의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당헌상 대선 경선은 대통령 선거일(12월 19일) 120일 전인 8월 21일까지 마쳐야 한다. 당 지도부는 일단 다음 주까지 대선 경선을 8월 21일 치를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만약 경선일이 8월 21일로 정해지면 빠듯한 일정으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당 지도부의 결정에 앞서 박 전 위원장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오픈프라이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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