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때도 돈으로 동원” “자금 다 불겠다”… 내분 조짐
朴의장 재산 76억→97억… 개인돈 안쓴듯해 출처 의문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고승덕 의원실에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와, 서울지역 당협 사무국장들에게 돈을 돌리도록 구의원들에게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 안병용 씨가 11일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한나라당이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당시 대표 경선에 나간 박 의장을 도왔던 이들이 돈을 돌린 사실이 확인되면 한나라당 대표를 거쳐 현재 입법부 수장인 박 의장 개인뿐 아니라 여권 전체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질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2002년 대선자금 수사로 ‘차떼기 정당’으로 불렸는데, 이제 ‘돈봉투 당’이란 오명까지 더해지게 됐다”며 “2004년 탄핵 역풍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 4·11총선을 치러야 할 것 같다”고 침통해했다. 당내에선 “최구식 의원 비서의 ‘디도스 파문’이 태풍이라면 이번 돈봉투 사건은 쓰나미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통합당은 이날 박 의장 사퇴 촉구안을 임시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의하는 등 정치공세를 계속했다.
○ 박 의장 개인 돈 썼다면 재산이 늘어났을까
검찰 수사가 돈봉투의 자금원 추적으로 이어질 것이 예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돈의 출처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전대 당시 박 의장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박 의장 측이) 현금으로 돈을 조달했기 때문에 계좌를 거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검찰의 계좌추적으로는 돈의 흐름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의 출처에 대해 “박 의장이 출판기념회 등으로 모아둔 사비를 많이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지난해 97억1200만 원의 재산을 신고한 재력가다. 자신의 개인 자산으로 전대 비용 일부를 조달할 여력이 충분하다. 그러나 2007년 76억 원대이던 박 의장의 재산이 지난해까지 계속 늘어났다는 점 때문에 박 의장이 전대에서 ‘개인 돈’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박 의장 캠프에서 기업들에 후원금을 부탁하는 전화를 많이 돌렸다는 증언도 있다. 당시 친이(친이명박)계의 지원을 받아 집권당 대표 선출이 유력했던 박 의장에게 기업이 미리 ‘보험’을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을 치르고 난 잔금을 지원했다는 얘기, 2008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이계가 비례대표 후보자들에게 공천헌금으로 받은 자금이 박 의장 측으로 들어갔다는 설도 나온다.
○ 대선 경선으로 불똥
2007년 이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이번 돈봉투 사건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논란도 커지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11일 기자들에게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제주도의 경우 대의원이 500명도 안됐는데 전당대회장에 양쪽에서 2000명씩이 왔다” “강원도에서도 대의원은 600∼700명인데 각각 3000명씩이 동원됐다”고 말했다.
친박계 이경재 의원은 11일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2007년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돈봉투가 돌았다’는 홍 전 대표와 원희룡 의원의 주장에 대해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는데 소외지역 원외위원장들에게 얼마씩 돌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이재오 특임장관과 가까운 한 당협위원장은 “거마비, 밥값 수준의 돈을 문제 삼아 응징하겠다고 하면 내가 알고 있는 2007년 박근혜 경선자금을 다 불어버리겠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 재력가 의원들이 수십억 원의 자금을 모아 캠프의 운용자금을 댔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면 이명박 캠프는 이 대통령의 개인 자금으로 인력과 버스 동원을 했다는 것이다.
○ 만인의 만인에 대한 ‘총질’
‘자폭성 총질’이 계속되자 당내에선 “당을 깨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차라리 당의 간판을 내리는 게 낫다”는 재창당 및 당 해산 주장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트위터에 “한나라당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가고 있다. 수명을 다한 증거”라는 글을 올리며 재창당을 주장했다.
안형환 의원도 KBS 라디오에 나와 “당의 기본 틀을 깨지 않고는 국민의 거부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의원총회에서 재창당을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공천 기준을 바꾸는 식의 쇄신책으로는 위기를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석 달 앞둔 상황에서 당을 해산하면 국고보조금 등에서 수백억 원의 금전적 손실을 보게 된다는 현실적 판단과 돈봉투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에 재창당을 추진한다면 ‘집단적인 책임회피’ 시도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란 반론 때문에 재창당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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