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선]박근혜, 가볍지만은 않은 특사 발걸음

■ 오늘 유럽으로 출국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사진)는 28일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9박 11일의 유럽 3개국 방문길에 오른다. 4·27 재·보궐선거 바로 다음 날 출국하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은 “선거는 지도부를 중심으로 치르는 것”이라며 이번 재·보선과 거리를 둬왔지만 선거 결과 한나라당이 패배하면서 박 전 대표의 출국 발걸음도 가볍지만은 않게 됐다는 관측이 많다. 야권의 대선주자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한나라당 지지층이 견고하다고 알려진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국회에 입성하게 된 건 특히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은 “정부와 여당에 대해 민심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였다”면서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손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야 대선주자들 중 압도적으로 지지율 1위를 달려온 박 전 대표에게 맞설 야권 주자로 급부상할 가능성 때문이다.

선거 패배가 박 전 대표에게 되레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하는 친박(친박근혜)계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이 그동안 ‘여권 내 야당 대표’ 역할을 해온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당을 개혁하지 않으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내년 선거를 치르자는 ‘박근혜 역할론’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지도부 교체를 놓고 당내 계파갈등이 재연돼선 한나라당에 희망이 없다”며 “수도권 소장개혁파 의원들과 친박계에 당권을 맡기고 객관적 합리적으로 총선 공천을 해서 박 전 대표가 선거 지원에 나서는 모양새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당장 선거 패배로 전면적인 당 쇄신 요구가 분출되면 박 전 대표가 어느 쪽에 설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당내에선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와 개혁성향 소장파 중 누구의 손을 잡을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 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대통령 특사로 출국하는 상황에서 국내 정치를 언급하는 것은 상대 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박 전 대표에게는 (순방 기간인) 열하루의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상황 전개를 충분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세종시와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제외하곤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 말을 아껴온 박 전 대표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조용한 행보’에 변화를 보일지 주목하고 있다. 정부 여당에 대해 악화된 민심이 투표로 나타난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