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사회 구축을 위한 민간 차원의 첫 토론이 열린 17일 ‘공정한 사회: 새로운 패러다임’ 학술행사는 국내 사회과학 분야를 대표하는 한국정치학회 한국경제학회 한국사회학회 한국경영학회가 공동 주최자로 참여한 학제 간 교류의 장이었다. 김세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국내 최대 4개 학회가 함께 학술회의를 개최하기는 처음”이라며 “이날 모임이 공정한 사회 추진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본격적인 토론의 마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행사는 △정치와 공정한 사회 △공정한 사회와 한국 경제 △사회적 불평등 구조와 공정한 사회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동반성장 등 4개 세션으로 나뉘어 하루 종일 진행됐다. 전문가 12명이 발제를 하고 분야별 쟁점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 한국사회의 정치적 공정성 제고 방안을 논의한 ‘정치와 공정한 사회’ 세션에서는 공정성 담론의 확산 과정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서구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 문제 등이 논쟁 대상이 됐다. 선거제도와 정당정치의 개혁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 “국가와 시민사회가 공정사회 함께 논해야”
장동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의 공정사회 담론’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해 8월 이후 정부가 공정사회 담론을 주도해온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공정성에 대한 최종 판단의 책임을 짊어지면 사회갈등에 휘말려 결과적으로 국가정책의 불확정성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의 절차, 내용, 실행 등의 문제에 대해선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내부에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기 때문에 논의 과정에서 불안정과 불확정성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김병관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도 “공정은 최종 목표가 아닌 수단적 가치에 가깝다”며 “결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자원과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야 할 정부가 논리적인 개념의 엄밀성도 갖추지 않은 공정 개념을 내세우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민간의 적극적인 논의 참여를 전제로 한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장 교수는 “시민사회 역시 대중주의(populism)와 갈등 분열로 흐를 수 있는 만큼 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대표자가 회합해 공적(公的) 문제를 논의하는 중간 수준의 연결고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찬욱 한국정치학회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공정한 사회’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스며드는 담론과 개혁정책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 “서구와 한국의 차이 반영해야”
장 교수는 ‘공정한 사회’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느냐”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정의론’의 저자인 미국 정치학자 존 롤스 교수가 주장한 것으로 개인적 자유의 신장을 우선적인 과제로 하되 기회의 평등과 ‘차등의 원칙’(약자의 지위를 개선하는 것을 전제로 한 사회적 불평등의 허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골자다.
토론자들은 문제 제기에는 동의했으나 서구 사회의 정의 개념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에 대해선 반론을 폈다.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롤스의 주장은 자유가 충분히 보장된 영미 국가에서 가능한 한 최대한의 사회·경제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이론적 구성물”이라며 “한국은 아직도 충분히 개인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이지 않으며 과거사 청산 문제 등 서구와 다른 역사적 과제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종국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은 특정 지역에서 태어나 죽는 역사를 지닌 ‘서사적 존재’이기 때문에 공정한 사회를 꿈꾸려면 공동체의 역사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제도와 정당정치의 공정성 필요”
현행 선거구제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금처럼 특정 지역에 근거를 둔 거대 정당들이 정당 득표수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하는 제도 아래에서는 공정한 정치의 핵심인 ‘1인 1표’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며 “큰 선거구와 작은 선거구의 유권자 비율이 3 대 1에 이르는 선거구 획정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선 현재 299석인 국회 의석수 가운데 54석에 불과한 비례대표 자리를 더 늘려 국회의원 정족수를 늘리거나 정족수를 현행대로 유지하되 비례대표의 증원수만큼 지역구 의석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객관적인 제3자가 장기적 관점에서 선거구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당 지도부가 소속 국회의원들을 초등학생 대하듯 하고 다수당이 힘으로 소수당의 목소리를 누르는 현재 정당정치 구조가 민주화되지 않는다면 비례대표 의석 확대나 선거구 조정은 큰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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