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대화재개 ‘美風’ 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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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즈워스 “인도적 식량지원 검토… 北정권교체가 목표 아니다”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 리졸브와 독수리훈련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한국과 미국, 북한에서 대화 재개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잇달아 감지되고 있다.

미국은 1일(현지 시간) 대북 식량지원에 긍정적 태도를 나타내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진전을 전제로 북-미관계 정상화에도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한층 유연해진 자세를 보였다. 이런 기류 변화에 호응이라도 하듯 북한도 2일 은근히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대북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에 대해 지원 필요성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우리는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문제를 분리하고 있다”며 대북 식량지원 재개 쪽에 무게를 뒀다.

보즈워스 대표는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은 철저한 수요조사와 적절한 모니터링, 지원 식량의 전용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보장돼야 가능하다”며 “북한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후 북한과 모니터링 시스템에 대해 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식량지원 재개를 카드로 북-미 간 접촉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 北 노동신문 “대화 분위기 조성” 유화제스처 맞장구 ▼

보즈워스 대표는 또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는 정권 교체가 아니라 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 지도부의 행동 변화’”라며 “미국의 현 대북정책은 제재를 강화하는 동시에 한편으로 건설적 대화를 추구하는 ‘투 트랙’ 정책”이라고 말했다.

청문회에 함께 나온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평화를 깨뜨리고 국제사회에 저항하는 행동에 대해 보상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와 도발행위 중단 등 행동 변화를 나타낸다면 미-북 관계 정상화를 위해 움직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식량지원 재개와 관련해서는 “아직 검토 단계”라며 “한국 정부와도 긴밀한 조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한반도 문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북한이 미사일을 더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줄 뿐이다.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북한과 양자회담을 시작해야 한다”며 6자회담에 앞선 북-미 양자회담을 촉구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은 이 대통령의 발언과 맞물려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1일 3·1절 기념사에서 “우리는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북측의 사과를 요구해 온 정부의 태도가 다소 유연해진 것이다.

한미 간 물밑 조율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를 집중 논의했지만 남북 대화를 전제로 한 6자회담의 재개, 북-미 대화 전략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정부가 남북 군사실무회담 결렬 이후 회담 내용의 언론 유출을 이유로 회담 대표단을 비롯한 관계자들에 대해 대대적인 보안조사를 벌인 것도 그만큼 정부가 회담 결렬에 부담을 느끼고 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8일 한미 군사연습을 앞두고 ‘핵참화’ ‘서울 불바다’ ‘전면전’ 등을 경고했던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일 한미 군사연습의 중단을 요구하면서도 “지금은 대화 쌍방이 군사적 행동을 자중하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상호 신뢰를 도모하기 위해 힘써야 할 때”라고 밝혔다. 북한은 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도 “우리는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다”고 밝혔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이번 키 리졸브 기간에 추가 도발에 나서지 않는다면 남북관계가 최소한 지난달 군사실무회담 결렬 전의 기류로 복원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군사연습이 끝나면 남북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도 국회와 미국으로부터 대화 압력을 받고 있고 북한도 일단 군사실무회담에 나온 이상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변화에는 중국의 역할이 있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과 장즈쥔(張志軍) 외교부 상무부부장은 최근 방북에서 북한 측에 남북대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미, 남북 대화와 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결정적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한미 양국도 대화와 압박을 병행한다는 기존 원칙에는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일 통일부 창설 42주년(3월 1일) 기념식에서 “대북정책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북한의 근본적 태도 변화 여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방문한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북한·이란제재 조정관도 이날 위 본부장과 만난 뒤 약식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한미)는 북한 UEP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9·19공동성명 위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안보리 의장성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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