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은 콘텐츠가 문제…교육개혁 직접 챙기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5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정정길 대통령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3대 국정운영기조와 5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정정길 대통령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3대 국정운영기조와 5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집권 3년차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4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밝힌 올해의 최우선 국정과제는 ‘일자리 찾기’였다. 이 대통령은 또 “우리가 내세우는 비전이 세계가 내세우는 비전이 되게 해야 한다”며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선진일류국가의 기초를 확실히 닦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남북관계]
北유화태도 긍정적… 이벤트는 거부
국군유해 발굴 北지원과 연계 추진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에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새로운 전기’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북한이 1일 신년 공동사설 및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 등을 통해 남북 최고위급 대화, 특히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맞물려 올해 한반도 정세를 총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언급이다.

이 대통령은 물론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이날 연설 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 물밑 접촉이 있느냐는 물음에 “물밑에선 숨도 못 쉬는데…”라고 받아넘겼다.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에서 우호적으로 나온 데 대해선 “(남북이) 서로 욕 안 하는 것만 해도 오랜만이다. 긍정적 변화의 일부다. 수십 년 해오던 관습을 약간 벗어난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정상회담 장소를 묻는 질문에는 “콘텐츠가 문제”라고 했다. 만남 자체를 위한 이벤트성 정상회담은 의미가 없으며 북한이 핵 문제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등 인도적 사안에는 어떤 자세로 나올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이 남북 간 상시적 대화기구 마련을 제안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상시적 대화기구란 이 대통령이 2008년 4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제안했던 ‘서울-평양 상설 고위급 연락사무소’를 의미한다. 당시엔 북측이 호응을 하지 않아 흐지부지됐지만 북측이 최근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어 구체적인 결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상회담도 일회성이 아니라 상시적 대화기구 설치, 남북 고위급 회담 정례화 등과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남북관계가 올해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희망적 관측이 나오는데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좋아진다는 게 뭐냐’는 근원적 물음으로 보면 된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려면 필요하면 만났다가 그렇지 않으면 문을 닫고 하는 게 반복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수시로 얘기하고 대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대통령이 6·25전쟁 당시 북한에서 숨진 국군용사들의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국방부는 “인도적 차원과 국가책무 이행 차원에서 남북 군사회담이 열리면 우선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문상균 북한정책과장은 “이 사업은 2007년 11월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이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이행되지 못했다. 대북 지원과 연계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회생]
서비스업-혁신中企키워 고용 창출
고용전략회의 대통령이 매달 주재


이 대통령의 경제 관련 새해 메시지는 ‘일자리 창출’과 ‘비상경제체제 탈출’로 요약된다. 이 대통령은 아예 ‘올해의 정부는 일자리 정부’라고 규정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제·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경제정부 형태로 운영했다면 올해는 민간과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내는 역할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고용 없는 성장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부와 기업,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며 “일자리의 보고인 서비스산업을 진흥하고 혁신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청년층은 구직난에,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수급 불일치를 타개하기 위해 일자리 관련 통합정보망을 구축하고 직업훈련체제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도 많은데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들이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를 요청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일자리 대책의 연장선에서 직업관과 근무 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평생 하나의 직장만을 갖는다는 생각에서 탈피해 복수의 직업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임금피크제를 확산해야 하며 재택근무, 1인 기업, 사회적 기업 등 새로운 일의 형태도 넓혀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유급 근로와 자원 봉사를 결합하는 모델도 발굴해야 하고 주부와 노인들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올해 국정 핵심과제의 최우선 순위가 일자리 창출로 정해진 만큼 이달부터 매달 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국가고용전략회의’를 열기로 하고 후속 작업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상반기 중에 비상경제체제를 끝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상반기 안에 경제를 본궤도에 안착시키고 위기 극복의 과실이 서민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되겠지만 하반기에는 경제회생의 온기를 고루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비상경제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교육개혁]
“학부모 우려 알아… 정책신뢰 줄것”
외고폐지 등 여권 혼선 경고한 듯


이 대통령은 올해 교육개혁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교육 개혁은 4일 제시된 5대 핵심 과제 중 일자리 창출에 이어 두 번째로 강조됐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교육 문제를 특별히 강조하고 나선 데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교육 수요자들의 불신이 여전히 크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부터 지속적으로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학입시 자율화, 공교육 강화, 기숙형 고등학교와 마이스터 고등학교 추진, 학자금 대출제도 등 많은 정책을 내놨지만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낮은 데 놀랐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이날 “아직 교육 현장과 학부모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우려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새해에는 국민들에게 믿음이 가는 교육개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또 지난해 말 교육과학기술부의 대책 발표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외고 폐지 논란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국민들에게 혼선을 끼친 것에 대한 사후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정책은 많이 변하고 있는데 학부모들의 신뢰가 생기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입학사정관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공정하게 할지 의심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하지만) 굉장히 공정하게 할 것이다. 보는 눈이 많은데 불공정하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통령은 교과부에 입학사정관제의 ‘기준’을 마련해 교육 수요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대의 지역 안배 선발을 언급하며 “(지역 안배로 선발된 학생들의) 적응이 빠르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정치선진화]
“선거제도 올해 개혁” 시한 못박아
2012 선거철 전에 기초공사 의지


이 대통령은 정치개혁의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생산적인 정치, 합리적인 정치,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를 기대하고 있다”며 “정치의 선진화 개혁을 더 미룰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행정구역 개편은 이미 일정에 오른 만큼 자율통합에 나선 자치단체는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배타적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대결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도 반드시 올해 완수해야 할 과제”라고 시한까지 못 박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여야는 국민의 편에서 논의해 주길 부탁한다”며 정치권을 향해 정치개혁을 촉구했지만 세종시 문제 등 현안에 밀려 유야무야됐다. 행정구역 개편은 파격적 인센티브 덕분에 지자체 간 자율통합이 이뤄지고 있지만 선거 횟수 감축, 선거구제 개편, 비례대표제 개선 등은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올해는 국가 선진화 차원에서 손을 봐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생각이다. 내년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이어서 정치개혁 논의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청와대가 이를 밀어붙일 동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듯하다.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작년에 (이 대통령이) 정치개혁을 언급한 것이 선언적인 이슈 제기 차원이었다면 올해는 구체적인 진전이 이뤄지도록 힘을 실어서 독려하고 챙기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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