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 인터뷰전문

  • 입력 2009년 10월 5일 02시 57분


코멘트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글쎄요. 한 일도 없이 벌써 4년이 지나갔어요."

-그래도 역대 대법원장 가운데 법원에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법원장 처음 될 때는 법원에 좀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취임을 했는데, 막상 대법원장에 취임하고 난 이후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법원에 그렇게 빨리 변화가 오지 않더라고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4년 동안 법원이 변화해야 된다고 이야기했던 건 서구의 여러 국가들에서 실험했던 결과들이거든요. 실험해서 다 성공했던 제도이긴 하지만, 사회가 격변하는데 과연 20세기 서구에서 실험했던 재판 제도가 2020년, 2030년에도 타당한 것인가, 그대로 우리가 추종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봐야 합니다. 한 단계 뛰어넘는 구상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과연 어떤 것이 2020년, 2030년에 사법부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국민과 공감대를 사는 모습이 될지 그림이 잘 안 그려지네요."

-공판중심주의는 지금은 상당히 정착이 됐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정착은 됐다고 이야기들을 하긴 합니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에요."

-법관이나 법정이 부족해서인가요. 무엇 때문에 기대한 것만큼 안됐다고 보십니까.

"1945년 해방 이후, 60년 동안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똑같은 모양으로 재판을 해온 판사들이 하루아침에 변화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거 같아요. 전임 대법원장 계실 때 형사재판부를 많이 늘려서 그런 말하자면 공판중심주의를 할 수 있는 토양은 다 갖춰졌는데 판사들이 선배들로부터 몸을 배운 것을 탈피하는 것이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습니다. 공판중심주의는 기록을 읽는 대신 법정에서 들어서 재판하라는 겁니다. 사무실 안에서 기록 읽고 당신들끼리 재판하지 말고, 변호사도 있고 피고인도 있고 검사도 있는 자리에서 듣고 재판을 해서 '저게 유죄가 틀림없는 거 같다' '이 정도면 당신은 죄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하는 그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을 바탕으로 재판하라는 것이 공판중심주의에요. 법정 밖에서 기록 읽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법정 가서 그 일을 하면 됩니다. 나는 판사들의 의식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숫자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 말에 동의 안하나요."

-법관들은 업무가 좀 과중하다고 하던데요.(웃음)

"기록도 읽고 법정에 들어가서 말도 듣고 이 두 가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시간이 배로 드는 거죠. 만일에 법정에서 증거조사를 다해서 유무죄 확신이 들 정도로 조사가 된다면 사무실 와서 기록을 읽을 일이 없잖아요. 둘 중에 하나 선택을 해야죠. 두 가지를 다 하려고 하니까 이게 안 되는 거예요. 판사들이 그 동안에 애를 많이 써서 많이 바뀌었다고 얘기는 들었어요. 내가 실제로 가보면 좋겠는데, 대법원장이 법정에 나타나면 판사들 재판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가끔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 시작된 국민참여재판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국민참여재판의 근본생각은 우리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있어요. 사법권이란 것도 결국 권력의 일부분이니까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죠. 국민이 법관의 사법권 행사를 완전히 신뢰한다면 꼭 참여재판을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우리 국민이 법관이 전문으로 행사하는 사법권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안 보내기 때문에 '직접 한번 들어와서 사법권이 어떻게 행사되나 보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참여재판 제도에요. 그렇게 해서 성공하면 사법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높아질 겁니다. 지금까지는 판사들끼리만 앉아서, 어떤 의미에서는 밀실에서 재판하던 것을 내보인 거죠. 사법권의 주인이 국민이기 때문에, 주인에게 청지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잘하는지 한번 와서 보세요'라고 한 겁니다. 국민들이 참여재판 배심원 참가 꺼릴 줄 알았는데 너무 참여에 적극적이어서 감동적이에요. 사법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다는 뜻이어서 고무적으로 생각해요. 국민들이 재판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 관심 이외에 법조인들이 너무 당연하게 국민 참여 받아들여야 성공할 수 있어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면 대법원장은 전문경영인인 셈인데 지난 4년간의 성적이 어떤 거 같습니까.

"내가 매기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고 국민들이 점수를 매겨야 하는데 점수를 그렇게 높이 안 매겨줄 거 같은데. 최근 여론조사를 봐도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더라고. 그래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국민을 섬기려면 법관들의 의식 변화가 일어나야 할 텐데 방법이 있을까요.

"옛날에 사법권은 국왕이 행사하던 거예요. 주권자가 국민이라고 생각이 전환되면서 사법권도 결국 국왕이 행사하던 것을 국민이 가져갔고 이를 판사들에게 위임한 거지. 내가 '국민의 이름으로 재판한다'고 하니까 신문에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더군요. 그때 내가 그 신문 보면서 '신문기자는 대한민국의 지식인인데 그 말을 그렇게 이해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했어요.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국민을 대신해서라는 말입니다. 위임받아서 한다는 뜻이에요. 외국에서는 의심 없이 다 그렇게 생각해요. 미국의 연방 지방법원장이 이번에 우리 세미나에 왔는데 밥 먹는 자리에서 '사법권은 국민의 것이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국민이 참여해서 하는 배심재판이 아니면 재판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여튼 그런 뜻에서 우리 법관들이 의식이 바뀌어야 해요. 왕이 행사하던 사법권을 행사하듯 군림하는 자세에서 국민이 사법권을 내게 맡겨서 내가 그것을 대신 행사한다는 식으로 의식이 바뀌어야 해요. 의식이 바뀐다는 게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말하자면 민주주의 사회가 됐다지만,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온전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확실한 거 같지 않아요. 그런 생각이 판사들 가슴 속에도 은근히 투영돼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나도 판사 시절에는 내가 저 무지한 백성들 위해서 현자처럼 재판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내가 대법원장이 되면서, 재야 나가서 변호사를 하면서 보니 그게 아니예요. 나가서 보니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기대와 안에 있는 법관들이 국민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게 완전히 다른 거예요.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장벽 같은 걸 허물어야지. 그걸 안 허물면 법관과 국민 사이에는 영원히 넘지 못할 강이 흐르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장벽을 허물어보자. 그걸 하려면 법정을 통해서 해야지 어디서 하겠어요. 판사들이 나가서 연극을 할 수도 없고, 피켓을 들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거고. 그건 국민들 접촉해서 해야 하는데 법정을 통해 해야지. 세미나에 나가거나 방송에 늘 나갈 수도 없고 또 이렇게 신문기자와 매번 인터뷰할 수도 없고.(웃음) 그래서 판사들에게 법정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재판을 해보라고 이야기했는데 법관들의 의식이 잘 안 바뀌는 거 같아요. 잘 안 바뀐다기보다 우리 사법 나름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한 순간에 탈피하기가 쉽지 않은 거 같네요. 내 생각에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판사가 재판하는 것을 촬영해서 모니터링 한다던가 하는 것은 큰 변화인 것 같습니다.

"그건 내 재판을 판사들이 국민 앞에 내놔보겠다는 거예요. 과연 당신들이 우리에게 준 사법권을 적정하게 행사하는지 봐달라고 이야기한 것이니까요. 그건 굉장한 의식의 전환이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당사자 외에는 법정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어제 고등법원 부장판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구술주의, 공판중심주의 등 재판의 변화에 대해 다들 의식은 공감하고 있더군요. 현실이 따라가질 못해서 좀 실천은 지지부진하지만 의식만은 변화돼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이야기합디다."

-공판중심주의에 대해 검찰은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한 거 같은데요.

"원래 공판중심주의는 우리 형사소송법에 원칙으로 천명돼 있던 겁니다. 옛날에도 똑같은 조문을 가지고 재판을 했고, 지금도 조문은 거의 비슷합니다. 실무관행이 거기에 미치지 못한 거죠. 검찰도 인적, 물적 여러 가지 뒷받침이 안돼서 그렇지 잘 따라오리라고 생각해요. 그게 원안이에요. 법정 안에서 분쟁의 실체, 범죄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판사가 그냥 서류만 받아가지고 나간다면 누가 그 재판에 승복을 하겠어요. 자기 재판을 판사가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내 친구가 한 사람이 우리 법원에 어느 부장판사가 참 재판을 잘 하더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네가 뭘 근거로 재판을 잘한다고 그러느냐 물었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우연히 어느 법정에 들어갔는데 그 판사가 재판을 하는데 자기는 국외자인데도 재판을 보니까 무슨 사건을 갖고 무슨 재판을 하고 저 판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사자들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환히 다 알아서 자기도 그 사건이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더군요. 그러니까 재판 잘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겁니다. 그 얘기 듣는 순간에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재판이란 건 그런 재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법정에서 그런 게 이루어져야 돼요. 그게 이루어져야 재판다운 재판입니다."

-불구속 재판 원칙이 지금은 상당히 확립됐습니다. 한때 이 문제로 검찰과 마찰도 빚었는데요.

"검찰이 좀 불만이 있었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그건 뭐 갈등이라고 표현하긴 좀 어려운 거 아닌가 싶네요. 검찰은 구속하고 싶은데 법원에서 영장 기각하면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검찰이 영장 청구해서 구속되는 사람은 불만이 없을까요. 불만 있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 다퉈야 할 것이고. 법원이 공정한 마음으로 판단한 거 같으면, 국민들이 맡긴 사법권을 적정하게 행사했다고 생각되면 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근 시위 장면을 찍고 있던 경찰관 카메라를 뺏어간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두 차례나 기각돼 신문들이 사설에서 왜 법원이 공무집행방해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게 기각을 하냐는 사설도 썼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구속을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응징, 처벌이라 생각하면 그런 사람에게 그렇게 관대하게 하느냐는 말도 일리가 있을 수 있죠. 그러나 구속이라는 것은 재판을 하기 위해서 도망이나 증거를 없애지 못하게 하려고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신병을 구금하는 것이에요. 최종적인 응징은 판사의 재판에 의해 해야 하는 겁니다. 영장은 재판을 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인데 그 절차를 응징으로 생각하니까 그런 기사가 나오고 그런 견해가 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헌법에 유죄 판결 받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원칙이 있어요. 따라서 원칙적으로 불구속 재판을 해야죠. 시간이 가면 해결될 겁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취임한 이후 별건수사, 강압수사 안하겠다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내가 검찰에 대해 뭐라 이야기 할 건 없지만 검찰도 결국 검찰권이란 것이 국민이 검사들에게 우리 사회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서 우리 사회가 건전한 사회로 가도록 해달라고 위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검찰권이 행사돼야 하는가는 너무나 분명한거죠. 검찰이라고 해서 우리 국민을 검사가 주체가 돼서 계도하는 입장에 서려는 것은 이제 사회가 용납을 안 할 겁니다. 국민이 맡긴 검찰권을 어떻게 국민을 위해 적정하게 행사할 것인가. 그건 법원도 마찬가지지만, 검찰이 고민해야 할 문제에요. 우리는 깨끗한 사람이고, 우리는 정의의 투사고, 우리가 하면 무조건 옳고 그렇게 생각해서 국민들 우리 따라와라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대중에 영합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국민들의 보편적, 합리적인 생각에 맞게 검찰권이 행사되고, 사법권이 행사돼야 그게 맞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국회 개헌 논의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을 국회가 선출하자는 안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지금 헌법재판제도에 대해 이해부족으로 말미암은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추천하게 돼있어요. 왜 이렇게 분할이 됐냐면 대통령 추천은 법을 국회에 제안하는 사람 또는 그걸 집행하는 사람의 의견이 헌법재판에 반영돼야 한다고 하는 것, 국회가 추천하는 것은 법을 제정하는 사람의 의견이 헌법재판에 투영돼야 한다는 것, 사법부에서 추천하는 것은 법을 해석해서 재판하는 사람의 견해가 헌법재판에 투영돼야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법을 집행, 제정, 해석해서 판단하는 이 세 가지 입장에서 우리 법을 어떻게 볼 것이며 그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우리 국민적 법의식이 어떤 건지 도출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헌법재판 제도는 굉장히 잘 된 거죠. 그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 국회에서 선출하자는 안을 만들었는데, 그건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잘못을 심사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건 국회의 입법권에 의한 재심사에 불과한 거죠. 그런데 왜 그런 문제가 생겼냐면 그 동안에 행정부에 근무하는 법률가들이 적고, 국회 입법에 관여하는 법률가들이 별로 많지 않았어요. 국회 수석전문위원이나 국회의원이나 그런 분 중에 법률가가 많아지고 그런 자질을 갖고 있는 분들이 헌법 재판소에 가야해요. 행정부에서도 헌재에 가야하고. 그런데 수가 너무 적어서 그런 분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법부 내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대거 헌재로 갔고 그게 문제가 된 거죠. 운용이 잘못된 거지, 이상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로스쿨에서 앞으로 법조인이 쏟아져 나오면 20년, 30년 뒤에는 수많은 법률가들이 입법부, 행정부에 근무하게 될 거에요. 그때 가서 국회에서 종사하던 사람만 전부 헌재에 가면 안 되죠. 행정부에 근무하던 사람만 가도 안 되는 거고. 사법부가 갖고 있는 법률에 관한 견해가 헌법재판 과정에서 완전히 무시되면 헌법재판이 어떻게 국민들한테 공감을 얻겠어요. 전체 국민들의 법의식이란 걸 형성하는 용광로 역할을 해야 할 헌재가 한 부의 견해만 갖고 헌법재판을 하게 되지 않겠어요. 그래선 안 됩니다."

-제2기 양형위원회가 출범했는데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또 1기 양형위의 활동에 대해서도 평가하신다면….

"사법부 양형이 내가 생각해도, 국민이 생각해도 너무 온정적인 양형이 아니었나 걱정하는 것을 잘 알아요. 양형위 출범하면서 그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앞으로 그 활동에 따라 공정한 양형 이뤄질 거예요. 기준 마련은 잘된 일입니다. 판사마다 차별 있으면 국민이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양형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어요. 판사 여러 명 놓고 조사하면 항상 편차가 나요. 객관적 기준 마련해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2기 위원회에서는 서민 대상 많이 발생하는 사기 등 범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양형 기준 정해지면 이에 따라 재판하게 될 겁니다."

-1기 양형위를 통해 성 관련 범죄에 대한 형량이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살인'으로 일컬어지는 성 범죄에 대한 형량이 여전히 가볍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최근 이른바 '나영이 사건'으로 성 범죄에 대한 처벌 논란도 뜨거운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미 재판이 이뤄진 사건에 대해서 양형을 논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요.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국민의 법 감정과 법원의 양형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양형기준을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도 세심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고…. 하지만 일시적인 여론에 의해서 형량이 오락가락하면 사법의 신뢰가 떨어집니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요."

-양형과 관련해 법원의 양형조사관 도입 문제를 놓고 검찰과 갈등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검찰은 양형조사관이 피의자에게는 조사를 두 번 받게 하는 이중고를 주고 검찰의 조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하는 양형(구형)은 수사를 통해 나온 사실을 근거로 법원에 어느 수준으로 처벌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고, 법원에서 하는 양형 조사는 법관이 당사자들의 견해를 듣고 증거 조사를 통해 선고 형량을 정하기 위해 하는 거예요. 법원의 양형과 검찰의 구형은 근본적으로 다른 거죠. 따라서 검찰이 양형조사관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할 이유가 없다. 법관이 재판 과정에서 양형 조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양형조사관의 조력이 필요해 양형 조사를 한다면 하면 되는 거죠. 그 절차만 제대로 만들어서 하면 되는 것이지 검찰이 이 문제에 대해 관여할 성질이 아니에요."

-민일영 대법관 제청 과정에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청하는 사람(대법원장)과 임명하는 사람(대통령)의 생각이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갈등으로 볼 일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가 최근 친 서민 정책을 내놓았는데요 사법부도 친 서민 서비스를 할 계획이 없나요.

"내가 한 일 중에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우리 국민들이 와서 법원 이용하는데 편하게 해드리려고 민원실 대폭 개선한 겁니다. 국민이 법원에 와서 어느 지점에 딱 오면 내가 이런 일이 있어서 왔다고 하면 접수한 법원 직원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절차를 처리해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결과를 내줘야 합니다. 앉아서 국민더러 저리 가시오, 이리 가시오 하는 건 원안이 아니에요. 그래서 모든 법원에 종합민원실이란 걸 개설했어요. 그거야 말로 서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을 위해서 한 거죠. 또 소송구조라고, 돈 없는 서민들이 소송을 하거나 소송비용이 부족한 것을 도와주는 제도가 있어요. 특히 회생절차나 파산하는 분들이 비용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 그걸 보전해주는 그런 노력을 해보려고 해요."

-앞으로 남은 임기 2년 동안 역점을 두고 하고 싶은 일이 일이 있으신지요.

"우리 법원도 이제 종이문서를 갖고 재판하는 시대는 마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자소송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서 법원의 모든 문서를 전자파일로 대체하는 일을 해볼까 생각합니다. 형사사건에서는 전자문서 갖고만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할지 심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요. 민사 또는 행정사건에서는 변호사들이나 당사자들이 전자문서로 법원에 직접 소송서류를 제출하고 그걸 추적해서 기록을 만든다던지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면 원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굳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동기생 수가 100명 넘는 젊은 법관들이 신분 불안 느낀다던가, 고법부장 승진 못하면 옷을 벗어야한다던가 하는데 대해 획기적 개선안이 없을까요.

"사법부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보면 법관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안하는지 감독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결국은 잘하는 사람이나 잘못하는 사람은 눈에 띄게 되고. 그런데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면 조직이 생동감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가정법원에서는 다문화시대 등에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대법원 차원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으신지요.

"사법정책 자문위원회를 구성해서 논의하고 있어요. 가정법원이라는 조직이 굉장히 중요한 곳이에요. 옛날에는 우리의 가정이 파괴되는 일이 별로 없어서 가정법원 중요성 별로 실감하지 못했죠, 지금은 3분의 1정도의 가정이 파괴가 되고 있습니다. 그 뒤에서 후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곳이 가정법원이에요. 가정법원이 해야 할 일은 어린이들의 양육이나 성장과정에 대한 후견적 역할입니다. 그러려면 가정법원이 바뀌어야 하고, 시골까지 가정법원이 산재해있어서 국민들 아픔을 같이 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해요. 취임할 때부터 생각했는지 아직까지 실천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문위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를 해서 내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해보려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실천이 될지 안 될 지는 장담을 못하겠네요."

-전관예우 관행이나 국민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식이 여전한데 대책이 없을까요.

"판사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하는 것은 없어요. 감형 문제이지. 양형기준에 따라서 하면 불식되지 않을까요. 양형기준 만드는 것이 그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죠. 하나 더, 법정에서 실제 양형조사가 잘 이뤄져야 해요. 법정에서 이 사람은 징역 몇 년을 선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정도로 양형이 이뤄지면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옵니다. 그동안에는 그런 조사 없이 검사 구형, 변호사 변론만 듣고 가지고 들어와서 형량 결정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판사하고 사이에 줄이 없으면 중형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법정에서 심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되면 그런 불신이 사라질 겁니다. 기준에 따른 양형이 중요해요."

-변호사 단체의 법관평가 요구를 어떤 형태든지 수용할 생각은 없나요.

"글쎄 변호사 단체에서 법관 평가한다는 게.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아직 변호사 단체가 법관 평가하면 정말 사심 없이 공정하게 이뤄질까 의구심이 있어요. 어느 때가 되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아직은 이른 거 같아요. 자기 사건과 관계없는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사람들이 남에게 가혹하고 자기에게는 관대하죠. 평가가 공정하다면 수용해야겠지만 지금 우리가 그런지는 의구심이 있어요. 시간이 필요해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되면 우수 인재가 대형 로펌으로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대책이 있나요. 또 법률시장 개방 앞두고 우리 법조계가 힘써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제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데 법원에 우수한 사람들이 다 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라요. 법원에는 첫째로 소명 의식이 또렷한 사람이 와야 해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 다음엔 법원에 들어와서 평균인의 일반인들의 평균적인 의식이 있는 사람이 법원에 들어와야 해요. 너무 머리가 좋아서 자기 혼자 집착하는 사람이 오는 게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보통인, 소명 의식이 뚜렷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로펌에 우수 인재가 가도 걱정할 일 아니에요. 법조계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사회 각 분야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이 법률을 공부해야 합니다. 법률만 공부한 사람은 경쟁력이 없어요. 식품 공학이다 정보기술이다 아는 사람들이 법률 공부하면 더 훨씬 뛰어난 분쟁 해결 능력을 가지지 않겠어요. 또 언어가 통해야 합니다. 국제적 경쟁력 가지려면 언어 능력이 필요해요. 사회 각 분야의 전문지식과 국제적 언어 소통 능력이 핵심입니다."

-소송 증가에 대한 획기적 대책은 없을까요.

"소송을 증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법원의 대책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갈등을 증폭하는 사회가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사회로 전환될 때 모든 것이 해결될 겁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갈등을 증폭하는 자극적 요소가 많은 사회 같아요. 선진사회가 되면, 남을 배려하는 사회가 되면 이런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법원공무원노조가 행정부처 공무원 노조와 통합해 민주노총에 가입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법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사법부 공무원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공무원과는 구별돼야 합니다. 행정부 공무원들이 법 집행 할 때 잘잘못 가리는 게 사법부 공무원인데, 집행하는 사람하고 사법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하나의 노조를 구성한다고 하면. 국민들 눈에 법을 집행하는 자와 그 잘못을 가리는 사람이 함께 구별이 안돼서 재판에 대한 신뢰 해칠까 우려스럽습니다. 국민들이 의구심 가질 수 있어요.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설득을 잘 했으면 이해를 잘 했을 텐데 설득을 잘 못한 것 같네요. 법원 재판 중에 행정부 법집행 잘잘못 가리는 재판 많은데 그들과 접촉하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일이죠."

-최근 과거 시국 사건에 대한 재심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최근 보니까 상당히 많은 재판이 재심을 통해 시정되고 있더군요. 얼마 있으면 마무리 될 겁니다. 정리가 돼야 해요. 사법부가 과거에 재판을 잘못한 부분은 인간의 한계도 있고 그럴 수 있어요. 재심 인정이 그런 것을 시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적법 절차 거쳐 시정하는 것은 과거사 뿐 아니라 어떤 재판에서도 시정돼야 해요."

-끝으로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죠.

"법원에 와서 직접 법원을 경험하신 분은 국민 중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국민은 언론을 통해서 사법의 안방을 들여다봐요. 국민이 법원에 대해 긍정적이고 신뢰받을 수 있는 보도를 해주면 사법에 대한 신뢰가 향상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언론의 속성상 그런 기사 내보려기 어렵지 않나 싶어요. 지금 일간 신문에 나는 기사는 사법이 잘한다는 기사는 없고 부정적인 기사만 나오더군요. 그 기사 본 국민들은 법원이 매일 잘못을 저지른다고 생각하게 되죠. 법원이 하는 일에 대해 언론이 좀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도를 해줄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일시적으로는 독자의 호기심도 끌지 못하고, 언론 입장에서도 그렇게 매력적인 기사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사법에 대한 신뢰가 커지면, 법치주의가 완전히 정착돼서 그것으로부터 얻는 열매는 굉장히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리=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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