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법 개정안돼 하위법령 손도 못대

  • 입력 2009년 2월 5일 02시 55분


‘국회의 벽’에 꽉 막힌 규제개혁

실업급여-청소년복지 등 민생 관련 많아

여야간 이견 커 올해도 처리될지 미지수

서울에 사는 여중생 A(13) 양은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다. 아버지가 있지만 보호자로서 A 양을 양육하기는커녕 경제적으로 별다른 도움도 주지 않고 연락도 가끔 될 뿐이다.

청소년쉼터를 옮아다니며 살고 있는 A 양은 지난해 9월 구청을 통해 ‘특별지원대상 청소년’으로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경기도에 소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아버지의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어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위기에 처한 청소년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정작 A 양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제도의 맹점을 파악한 보건복지가족부는 소득기준 제한이 ‘황당한 규제’라고 판단하고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선 아동복지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된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에 앞서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한 상위법인 아동복지법 개정안부터 처리해야 가능하다.

복지부 당국자는 “경기가 꽁꽁 얼어붙어 A 양 같은 청소년이 늘고 있다”면서 “법안 처리를 서두르고 있지만 이번 국회에서 처리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음은 급한데 국회 벽 넘기가 어려워=이처럼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해왔거나 올해 추진할 규제개혁 관련 법안 중에는 거시적인 국가 정책 실현을 위한 것뿐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에서 당장 실질적인 민생과 관련된 사안이 적지 않다.

이런 과제 가운데 상당수는 국회에서 관련법을 제때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가능하다.

노동부가 올해 규제개혁 과제로 정한 자영업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실업급여 지급) 방안은 경제위기로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자영업자의 폐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여 시급히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보험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서둘러 개정법안을 준비해 9월에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가 계획한 대로 규제개혁 법안이 처리되기는 쉽지 않다.

국무총리실은 지난해 10월 ‘규제개혁 추진 상황 및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기업의 투자 의욕을 높이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연말까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동의명령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부로서는 이미 지난해 7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라 연내 완료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여야가 처리를 미적대면서 아직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여야 간 견해차가 워낙 큰 사안이 적지 않아 올해도 국회에서 제대로 처리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위 법령 개정도 상위법과 연동=정부 규제개혁 과제 중에는 하위 법령만 개정하면 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위법 개정과 연동돼 있는 사안이 상당수다.

금융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은행의 금융 자회사 업종 완화 방안은 금융회사가 출자할 수 있는 금융자회사 업종을 상법상 회사가 아닌 투자조합(vehicle)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은행업 감독규정만 바꾸면 된다.

그러나 상위법인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어 하위 규정만 먼저 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부 당국자는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규제 개혁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규제 개혁을 하는 동안 국회는 의원입법을 통해 새 규제를 만들거나 기존의 규제를 더 강화할 수 있다. 정부 입법의 경우 입법예고 후 반드시 규제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의원 입법에는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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