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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8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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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아버지는 南침투 도중 피살… 두 동생 보위부 근무
계부 金씨, 대남공작 간부 출신… 더 중요한 임무 띤듯
北보위부 간부 “정화 네가 못하면 딴사람 시켜 살해”
제2, 제3의 간첩 수사… 원씨 이중스파이 활동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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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위장 남파 여간첩 원정화(34) 씨가 2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 원 씨와 계부 김모(63·구속) 씨 등의 행적이 하나씩 베일을 벗고 있다.
▽온 가족이 공작원=원 씨는 본인뿐만 아니라 친아버지와 계부, 동생들이 모두 대남 공작 부서에서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 씨는 1974년 1월 함북 청진시에서 아버지 원모 씨와 어머니 최모 씨의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그러나 친아버지는 그해 북한 공작원으로 남한에 침투하던 도중 피살됐다. 어머니 최 씨는 1976년 계부 김 씨와 재혼했고, 원 씨의 여동생과 남동생을 1명씩 낳았다.
출신성분이 좋고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원 씨는 ‘이중영예 붉은기 휘장’을 받은 적이 있고, 15세 때는 공작원 양성소인 금성정치군사대(지금은 김정일정치군사대)에서 돌격대 간부교육을 받았다. 이어 특수부대에 입대해 1년 3개월가량 독침뿌리기, 오각별던지기, 표창던지기, 사격훈련, 극기훈련 등을 받았다. 당시 월북한 남한 군인으로부터 남한 말씨와 지리도 익혔다.
계부 김 씨는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좌(한국군의 소령에 해당)를 지낸 엘리트 노동당 간부로 북한 대남 공작 관련 부서의 고위 간부로 근무했다. 원 씨의 여동생은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 남동생은 보위부의 운전기사로 근무하고 있다. 1996년 원 씨가 아연을 훔친 죄로 중국으로 달아났을 때 계부 김 씨는 “우리 집안에 역적이 나올 수 없다”며 돌아올 것을 다그친 일도 있었다.
원 씨는 2003년 3월 정보요원 이모 씨로부터 “북한의 군사기밀을 파악해 주면 딸을 키워줄 것이며, 협조해 주면 매월 통장에 500만 원씩 주겠다”는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원 씨는 부탁받은 정보를 실제 수집한 뒤 이를 남한에 넘겨줘도 되는지 북측에 보고하고 허락을 받은 뒤에야 이 씨에게 넘겼다.
2004년 7월에는 또 다른 국내 정보기관 요원 김모 씨가 원 씨로부터 북측 정보를 입수하려고 필요한 정보 목록을 적어 건넸다. 그러나 원 씨는 다음 달 중국 선양에 있는 북한영사관에서 보위부 간부를 만나 “남한 정보기관 직원들이 조국 관련 정보를 요구한다”고 보고하고 김 씨가 건넨 쪽지를 보여줬다.
보위부 간부는 깜짝 놀라며 “이게 뭐야, 이 새끼들 죽으려고 환장했군”이라면서 쪽지를 복사한 뒤 김 씨를 살해하라며 원 씨에게 독침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원 씨는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제2, 3의 원 씨 암약?=원 씨를 조사하면서 합수부는 국내에서 암약하는 또 다른 간첩이 있다는 것도 감지했다.
원 씨는 살해 지시가 떨어진 남한 정보요원을 죽이지 못하는 등 여러 차례 임무 수행에 실패하자 보위부 간부로부터 “네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시키겠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5월 북측에서 지령을 내리는 김모 씨와 통화할 때에는 “스포츠형 머리에 덩치 큰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군 장교들의 명함과 군부대 위치 약도를 건네주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합수부는 탈북자 또는 조선족 동포로 위장한 채 활동하는 제2, 제3의 원 씨가 국내에 다수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원 씨는 자신의 임무 수행이 미흡하자 다른 남파 간첩에게 자신이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집에 자물쇠를 4개나 설치하기도 했다.
▽계부 김 씨가 더 비중 있는 간첩=합수부는 원 씨보다는 계부 김 씨가 북한에서 맡았던 직위나 비중으로 볼 때에 더 큰 임무를 띠고 국내에 침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평양 미술대를 졸업한 뒤 인민무력부 장교로 복무 당시 공군 메달을 받았고, 청진시 부윤구역에 있는 군수품 공장 설계도를 잘 그려 국가 훈장을 받기도 했다. 조선노동당원으로서 도 안전국에도 근무했다.
김 씨는 원 씨가 한창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던 2006년 캄보디아를 거쳐 입국한 뒤 탈북자로 귀순했다.
합수부 관계자는 “김 씨의 역할이 무엇인지 집중 추궁하고 있지만, 원 씨가 입을 잘 열지 않는다”며 “계부와 딸 사이지만 점 조직으로 이뤄져 원 씨도 김 씨의 역할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합수부는 지난달 15일 원 씨를 경기 군포시의 자택에서 체포했을 때 김 씨 역시 임의동행 형식으로 소환해 조사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일단 석방했다.
이후 원 씨가 김 씨로부터 공작금을 받은 사실을 자백해 김 씨를 국가보안법상 편의제공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합수부는 뒤늦게 김 씨의 서울 자택을 압수수색했으나, 이미 집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어 별다른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