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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15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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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소에 당신들이 촛불을 밝힌 것처럼 금강산 사건도 북한의 무례한 행동으로 판명 날 경우 촛불을 드십시오. 당신들의 사회 참여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한쪽 편만 드는 당신들은 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ID 나도 정의)
박왕자(53) 씨가 북한 금강산 관광 도중 피격당한 소식이 알려지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이 같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국민의 건강권을 내세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제단이라면 “무고한 민간인의 피격 소식에 눈 감을 수 있느냐”는 지적과 항의가 담겨 있다.
이 같은 댓글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주도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한 이명박 탄핵연대, 진보연대 등의 홈페이지에도 올라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국민을 그토록 생각하는 대책위에서 식탁 안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생명의 안전을 위해서도 촛불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특히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북한의 태도는 누리꾼의 공분을 자아냈다. 무고한 민간인을 엄연히 사살해 놓고도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꾼이 최근 촛불시위를 주도해 온 진보 성향의 단체들을 향해 이처럼 글을 올리는 배경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들 단체로선 “또 다른 색깔공세”라고 넘겨버리고 싶겠지만 그럴 수만은 없는 대목이 분명히 있다.
박 씨의 피격 자체만 놓고 보면 단순하다. 대책회의 등이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광우병 문제를 국민 건강권으로 이슈화했다면 박 씨 피격은 국민의 생명권이 직접적으로 침해당한 것이다. 법익 침해 정도만 따지면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광우병 촛불시위에 불을 지핀 MBC PD수첩의 보도는 담당 번역자의 문제 제기로 보도의 신뢰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PD수첩의 왜곡 보도 의혹을 수사하고 있고, 서울남부지법에선 관련 보도에 대한 반론보도 소송 재판이 진행 중이다.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한 많은 진보 성향 단체가 대정부 투쟁엔 목청을 높이면서도 유독 북한 문제 앞에선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아닌지도 짚어 봐야 한다.
2006년 10월 북한의 예상치 못한 핵실험 이후 진보 진영 일각에선 “북핵은 자위권”이라는 북측 논리까지 버젓이 등장해 국민을 당혹하게 했다. 일부 진보 진영에선 단골 슬로건이었던 ‘반전반핵’ 가운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반핵’이란 표현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박 씨 피격 사건은 이념적 잣대로만 볼 수 없다. 그가 관광을 간 무고한 민간인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소박한 촛불들을 보고 싶다. 더는 제2, 제3의 박 씨가 나와서는 안 된다.
정연욱 사회부 차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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