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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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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은 북한 처녀들이 뉴욕 필 연주에 맞춰 ‘아리랑’을 따라 부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이었다. 음악이라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녹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코리안심포니 음악감독 박은성 씨)
클래식 공연사상 최초로 전 세계에 TV로 생중계된 26일 뉴욕 필의 평양공연. MBC TV를 통해 공연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이 가장 큰 호기심을 보인 모습은 뉴욕 필 단원들이 기립한 채로 북한 국가와 미국 국가를 차례로 연주하는 장면. 북한의 금기 하나가 깨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명지대 강규형(현대사) 교수는 “북한의 심장부에서 미국의 국가가 연주되고 성조기가 걸리는 것은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라며 “북한이 다음 달 열리는 월드컵 예선에서 남한의 태극기와 애국가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번 공연을 계기로 더욱더 많은 금기가 깨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종 미국적 분위기의 음악이 연주됐다는 것도 놀라움이었다. 음악평론가 이순열 씨는 “뉴욕 필이 연주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나 거슈윈의 ‘파리의 아메리카인’,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은 모두 미국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곡으로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선곡이었다”고 평했다.
이번 평양공연은 화합과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마이크를 들고 해설을 곁들이며 연주회를 이끈 지휘자 로린 마젤은 마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하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며 “객석에 북한 관객, 미국인, 남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음악을 듣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고 평했다. 음악평론가 안동림 씨는 “마지막 앙코르곡이던 북한 작곡가의 ‘아리랑’은 하프로 시작해 시골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곡으로 무척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TV 화면에 비친 북한 관객들은 자유롭게 박수치고, 손을 흔들고, 음악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국내 공연장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악장 간 박수’가 한 번도 없었다.
이번 공연은 북한에 커다란 문화충격을 주었을 것이란 반응도 적지 않았다. 2006년 평양에서 열린 ‘윤이상 음악회’에 참석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전 서울대 음대 학장) 씨는 “예전의 문화행사는 공연장에 온 제한된 수의 관객만 관람했지만, 이번 뉴욕 필 공연은 북한 전역에 생중계됐다는 점에서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던져 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고려대 국제대학원 김성한 교수는 “전 세계로 생중계된 뉴욕 필 평양공연은 북한이 ‘악의 축’ 이미지를 벗고 우리는 ‘정상 국가’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는 것”이라고 평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