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들 ‘마법’같은 공약 남발…대통령은 마술사가 아니다”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 ‘대선후보 공약 1~5 지수화 분석’ 자문단 결산 좌담

《“대통령은 마술사가 아니다. 대선 후보들이 달콤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민은 냉정하게 판단해 이들의 ‘마법’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본보가 10월 25일∼11월 1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공약을 분석해 연재한 ‘2007 대선 어젠다’ 시리즈에 자문단으로 참여했던 각 분야 전문가들은 상당수 공약이 실현되기 어려운 ‘장밋빛 청사진’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리즈 결산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후보들의 공약이 ‘선진화 이슈’라기보다는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주제이거나 표심만을 고려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요소가 적지 않았다”며 “특히 공약 간에 상충되는 것도 있어 국민이 면밀히 검토한 뒤 투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본보의 이번 기획 시리즈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큰 각 후보의 핵심 공약을 지수로 계량화해 유권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신선하고 의미 있는 보도였다”고 평가했다. 이번 시리즈에는 대학교수 등 45명의 전문가가 자문단으로 참여했으며, 이날 좌담회에는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이 참석했다.》

○ ‘대선 어젠다’ 시리즈 평가

▽강석훈=두 유력 대선 후보의 정책노선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수치로 보여준 데 큰 의미가 있었다. 예컨대 조세 공약에서 한나라당 이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 후보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지수가 ‘이 후보 4.0, 정 후보 3.1’로 나온 것을 보고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부동산 규제 완화 분야에 있어서는 ‘이명박 4.0, 정동영 1.8’로 확연한 노선 차이를 보였다. 상당히 유용한 접근이었다.

▽권대봉=교육부문에서 화두로 떠오른 규제 완화 부문도 ‘이명박 4.0, 정동영 2.6’으로 비교평가가 가능했다. 주관적인 주장을 전문가들이 계량화해 보완한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높고 독자들에게 신뢰를 준 것으로 평가된다.

▽예종석=특정그룹면접(FGI·Focus Group Interview)을 해보면 일반 여론조사나 전문가그룹 심층 조사나 큰 차이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전문가 그룹의 대선 공약 평가를 수치화한 시도는 좋았다. 다만 두 후보 공약만 대상이 된 것은 아쉬운 점이다.

▽홍관희=이번 시리즈는 계량화된 지수로 대선 공약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 선거에서도 많이 참조할 것 같다.

○ 국민에게 피땀 요구하는 공약 왜 없나

▽강=후보들의 공약이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운하를 파겠다’거나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과거 패러다임에서 파생되는 근시안적 공약이다. 10년 후면 한국은 완전한 고령화사회로 접어든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후보들의 공약에는 ‘건전한 위기의식’마저 결여된 것 같았다. 공약을 분석해 보니 아직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선거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권=사교육비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공교육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도 두 후보는 공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정면으로 칼을 들이대지 못해 아쉬웠다.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들의 눈치를 많이 본 것 아니겠나. 정 후보가 대입 수능에서 영어시험을 폐지하고 대신 말하기 위주의 국가자격인증시험을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얼마나 고민한 정책인지 의문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교육 수요가 생기겠는가. 사교육 문제는 공교육 혁신으로 풀어야 한다.

▽예=자신의 표밭을 의식해 상대 후보와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억지로 공약을 만들었다는 인상도 받았다. ‘대기업 중심’이냐 ‘중소기업 중심’이냐 하는 말도 결국 말장난 아니냐. 국내 중소기업의 상당수가 대기업 협력업체다. 둘을 떼어놓고 존립을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7% 성장, 6% 성장’, ‘일자리 300만 개 창출, 250만 개 창출’ 등 구호성 공약도 난무한다. 성장에는 인플레이션이 뒤따르는데 물가도 같이 잡겠다고 하면 신뢰할 수 있겠나. 세금은 깎겠다고 하면서 복지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특히 유권자 눈치만 보지 말고 국민에게 ‘피와 땀’을 요구하는 공약도 있어야 한다.

▽권=대통령은 마법사가 아니다. 후보들의 ‘깜짝쇼’는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언론은 국민이 마법에 걸리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무상복지, 무상교육을 강조하는 공약이 많았는데 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다. 부유층이나 빈곤층을 막론하고 무상교육을 실시하면 중산층 이상에는 사교육 여력만 더 생기지 않겠나. 학교 수업시간에 빚어지는 문제점은 건드리지 않고 방과 후에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는 것도 깊은 성찰 없이 내놓은 공약이다.

▽강=경제나 복지 분야만 놓고 보면 국민에게 △성장을 통한 분배 △성장과 분배의 균형 등 크게 두 가지의 메뉴를 제공했다는 측면은 의미가 있다. 물론 공약들을 서로 면밀히 보다 보면 서로의 것을 베끼려는 시도도 일부 보였던 것 같다.

▽홍=한미동맹이나 민족공조 같은 분야를 아우르는 시대정신에 대해 두 후보 모두 지향하는 가치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지지자들의 성향을 의식해서인지 솔직하게 소신을 제시하고 이해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유권자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권=교육 분야 어젠다는 ‘경쟁과 자율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것이냐’, 아니면 ‘정부주도형 평준화 정책을 통해 현 교육체제를 공고히 할 것이냐’로 나뉜다. 정 후보는 ‘3불 정책(고교등급제, 대입 본고사, 기여입학제 금지)’을 고수하겠다고 하면서 “교육부는 대학에서 손을 떼라”고 했는데 이것은 상충된 공약이다. 국민의 감성을 터치하기 위한 전술로 보이는데 때로는 인기 없는 정책이라 해도 국민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핵심 문제엔 칼 못댄채 ‘장밋빛 청사진’

‘정부주도형’만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될지 의문

○ 핵심 내용 접근하지 못해 아쉬워

▽홍=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유권자가 더 심층적으로 공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후보 모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부정적 자세를 밝혔지만 그 속뜻은 다르지 않느냐. 정 후보는 자주나 민족공조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 후보는 굳건한 한미동맹이 뒷받침돼야 민족공조의 선순환구조가 이뤄진다고 보는 것 같다.

▽강=이 후보는 시장중심경제를 통한 성장, 정 후보는 정부가 주도하는 성장론을 내세우고 있다. 더 중요한 가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냐는 점인데, 이런 부분은 빠져 있다.

지난 10년의 경험으로 볼 때 정부 주도형으로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계속 이뤄낼 수 있겠느냐는 부분에 의문이 든다.

복지 분야도 단순화한 분배 모델만을 내세워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후보들의 생각을 정확히 내놓아야 한다.

▽예=이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 정 후보는 항공우주산업이나 제2의 개성공단을 내걸고 있다. 이에 대해 서로 검증하고 분석해 줘야 한다. 유권자들이 이들 공약에 대해 장단점을 충분히 알고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국민적 재앙이 있을 수 있다.

진행=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정리=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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