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흩어진 사내 데이터를 하나로, ‘지식 연결’로 업무 혁신

  • 동아일보

기업용 AI 스타트업 ‘글린’
수평적 에이전트 플랫폼 구현
부서별 AI 난립과 사일로 방지
명확한 타깃 공략해 시장 안착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AI 스타트업 ‘글린’의 맷 킥스묄러 최고마케팅책임자(CMO), 김수연 프로덕트 매니저, 토니 젠틸코어 공동창업자(왼쪽부터)는 취재진과의 현지 인터뷰에서 “AI 플랫폼으로 각 기업이 팀, 비즈니스, 목표, 문제에 대한 ‘통찰의 수준(Level of insight)’을 높일 수 있게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AI 스타트업 ‘글린’의 맷 킥스묄러 최고마케팅책임자(CMO), 김수연 프로덕트 매니저, 토니 젠틸코어 공동창업자(왼쪽부터)는 취재진과의 현지 인터뷰에서 “AI 플랫폼으로 각 기업이 팀, 비즈니스, 목표, 문제에 대한 ‘통찰의 수준(Level of insight)’을 높일 수 있게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
“회사 안에 축적된 지식을 제대로 연결해 쓰기만 해도 생산성은 지금의 세 배가 될 것이다.”

1990년대 HP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루 플랫이 남긴 이 말은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기업 내 방대한 데이터와 문서를 쌓아 두고도 직원들은 왜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찾아 쓰지 못하고 있을까.

201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기업용 AI 스타트업 ‘글린(Glean)’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 기업이다. 글린은 기업 전반에 흩어진 문서, 대화, 코드, 데이터 등을 회사의 맥락 안에서 연결, 통합해 사용자가 찾고자 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나아가 실제 업무까지 자율적으로 실행하는 ‘업무용 AI 플랫폼’을 표방한다.

최근 글린은 연간 반복 매출(ARR) 2억 달러를 돌파하고 지난 1년간 연간 계약 규모 100만 달러 이상의 고객군은 세 배 가까이 성장했다. 성공 사례가 없어 ‘기업들의 무덤’이라 불리던 엔터프라이즈 검색 시장에서 글린은 어떻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 글린의 성장 전략을 분석한 DBR 437호(2026년 3월 2호) 케이스 스터디를 요약, 소개한다.

● 비즈니스 혁신의 출발점, ‘수평적 플랫폼’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면서 많은 기업이 부서별로 AI를 도입했다. 영업팀은 세일즈 전용 AI를, 고객 지원팀은 CS 전용 AI를, 재무팀은 재무 전용 AI를 앞다퉈 도입했다. 하지만 곧 문제에 직면했다. 각 부서가 도입한 AI 솔루션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사일로(Silo)를 만들어낸 것이다. 게다가 개별 솔루션들을 도입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글린은 차별화된 전략을 택했다. 영업, 지원, 재무 등 특정 부서만을 위한 수직적(Vertical) 솔루션을 만드는 대신 엔지니어링부터 마케팅, HR, 영업에 이르기까지 조직 내 모든 부서를 아우르는 ‘수평적 에이전트 플랫폼’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실제로 모든 직원이 하나의 글린 플랫폼 위에서 회사 전체 데이터에 접근하고 에이전트를 구축할 수 있게 되자 업무 방식이 혁신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통상 기업 내 마케팅팀이 고객의 실제 반응을 이해하려면 영업팀을 찾아가 고객이 마케팅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직접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글린에는 모든 영업 통화가 녹음된 데이터베이스가 있어 마케팅 담당자들이 직접 영업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 또한 매주 영업 통화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고객 질문이나 관심 주제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글린 에이전트를 통해 마케팅팀은 검색 엔진 최적화(SEO) 전략을 조정하고 어떤 키워드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또 다른 활용 사례로 영업 담당자가 세일즈포스에 “이번 주에 계약이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입력하면 글린은 관련 이메일, 내부 메시지, 계약 문서 진행 상황 등을 함께 분석해 실제 가능성을 판단한다. 이어 과거 법무팀 데이터를 기준으로 계약 서명에 평균적으로 약 8일이 걸린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글린 에이전트는 이번 주에 계약이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점을 파악한다. 글린의 장점은 리더들이 이런 ‘위험 신호’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경영진은 강조했다.

● 특정 벤더에 종속되지 않는 AI 설계

글린은 출발부터 특정 AI 모델에 종속되지 않는 구조를 핵심 설계 원칙으로 삼았다. 오픈AI·구글·앤스로픽 등 주요 AI 기업이 제공하는 여러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단일 플랫폼에서 동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기업 고객은 AI 모델의 성능이나 가격, 정책이 바뀌더라도 특정 벤더에 종속되지 않고 상황에 맞는 최적의 기술을 선택할 수 있다.

토니 젠틸코어 글린 공동창업자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동·통합하고 가장 뛰어난 도구를 선택할 수 있는 것, 나아가 특정 생태계에 묶이지 않고 기업이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글린의 핵심 가치”라고 말했다.

● 명확한 타깃 공략한 GTM 전략


글린의 GTM(Go-to-Market) 전략의 핵심은 명확한 타깃 설정이다. 글린이 가장 먼저 공략한 고객군은 직원 수 500∼2000명 규모의 빠르게 성장하는 중견 기업들이었다. 이들 조직은 유연하고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는 데 적극적이었으며 자사 제품을 적극적으로 세일즈해 본 경험이 있기에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는 데도 더 열린 태도를 보였다.

그중에서도 글린은 사내에서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얻으면 제품 출시 속도가 빨라지는 기술 기업을 먼저 공략하고, 이들의 구체적인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대표적으로 글린이 집중한 문제는 정보를 찾는 데 소요되는 시간 절감, 디버깅 속도 증가, 신규 직원 온보딩 속도 향상, 영업 실행력 개선 등이었다.

또한 글린은 기업 전체에 대규모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식 대신 소수의 핵심 시스템을 연결한 파일럿 배포를 먼저 진행했다. 다시 말해 영향력이 큰 몇 개의 시스템을 연결해 단기간에 가치를 입증한 뒤 성과가 확인되면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식이었다. 김수연 글린 프로덕트 매니저는 “글린의 목표는 각 고객의 실제 데이터와 운영 환경에 기반한 측정 가능한 생산성 향상과 비용 효율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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