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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9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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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7일 발표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한 근거의 하나로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참평포럼) 연설이 ‘다수인이 참석하고 일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중계된 집회’였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선관위는 같은 발표문 뒷부분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설명할 때는 ‘강연의 대상이 참평포럼 회원으로 국한됐다’는 점을 들었다.
같은 연설 대상을 놓고 노 대통령의 발언이 법을 어겼다고 할 때와 법 위반이 아니라고 할 때 각각 다르게 해석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은 처벌 규정이 없으나 불법 선거운동은 처벌 조항이 있기 때문에 선관위가 노 대통령에 대한 형사 고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리한 해석을 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선거법 254조(사전선거운동기간 위반죄)에 따르면 정견 발표회 등 집회에서 선거운동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모인 행사라 하더라도 공식 행사이기 때문에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 선관위가 정치적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논거의 일관성에 문제는 있는 것 같다”면서도 “결론 자체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선관위는 “연설 대상의 성격은 여러 가지 판단 요소의 하나일 뿐이며 발표문은 언론에 알리기 위해 축약한 것으로 결정문과는 다르다. 발표문을 판결문처럼 해석하려 들면 안 된다”고 해명했다.
한편 선관위는 노 대통령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언급한 것이 후보자에 대한 비방을 금지한 선거법 110조를 어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7일 위원 전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5년 대법원은 박 전 대표의 홈페이지에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란 내용의 글을 17대 총선 직전 10여 차례에 걸쳐 올린 혐의(명예훼손 등)로 기소된 회사원 김모 씨의 행위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바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법제실에서 이 부분은 안건 대상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김 씨는 ‘박 전 대표는 출마 자격이 없다’는 등 강한 표현을 선거 직전 되풀이해 인터넷에 올렸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과 다르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일 연설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한국의 지도자가 다시 무슨 독재자의 딸이니 뭐니라고 해외 신문에 나면 곤란하다”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해서는 “제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민자(民資)를 투자하겠느냐”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선관위 관계자 “뒤집기 캐스팅보트 사실상 처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7일 노무현 대통령의 참평포럼 특강이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고현철 선관위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고 위원장이 ‘표결권’ 및 ‘결정권’을 행사하기 전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는 위원이 4명, 그렇지 않다고 보는 위원이 3명으로 불법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고 위원장은 불법이 아니라는 쪽에 표를 던진 뒤 가부 동수 상황에서 결정권을 행사했다.
선관위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사용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8일 “표결 결과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과거에는 표결까지 가는 일이 드물었다”며 “위원장이 표결권과 결정권을 사용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1997∼2003년 선관위원을 지낸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내가 일하는 동안 위원장이 결정권을 행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적이 거의 없고, 한 달 뒤로 안건을 미뤄서라도 토론해 합의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소장은 표결권은 있지만 선관위원장과 달리 결정권이 없다. 한 안건에 대해 가부 동수가 나오더라도 캐스팅 보트를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특히 헌재는 일반적인 사안은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지만 법률의 위헌 여부, 탄핵, 정당 해산,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 결정 등 중요 사안 의결은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해 결정권 논란이 생기는 것을 차단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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