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민동용]‘대선 피해예방 법안’ 옹졸한 한나라

  • 입력 2007년 4월 19일 03시 01분


한나라당 정치관계법 제·개정특위가 17, 18일 내놓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한나라당이 아직도 2002년 대통령 선거 패배에 따른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합대회, 야유회 또는 촛불시위 기타의 집회를 개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 광화문 일대를 메웠던 촛불시위에 대한 두려움이 엿보인다.

또 ‘대선 후보에 관한 의혹을 제기할 때는 증명 자료도 함께 공표하며 허위사실이 대선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면 당선을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실시한다’는 조항에서는 ‘병풍(兵風) 조작사건’을 일으킨 김대업 씨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대형 인터넷 포털사업자)는 선거일 전 12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와 관계있는 단어를 인기 검색어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조항은 인터넷과 누리꾼이 한나라당 편이 아니라는 피해의식이 느껴진다.

압권은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시설은 정당과 정당 후보자 간 또는 정당과 무소속 후보자 간의 후보자 단일화를 위한 토론 등을 방송할 수 없도록 한다’는 조항. 현재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는 열린우리당 등 범여권이 대선 막바지에 후보 단일화를 이슈로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것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가 묻어난다.

이 개정안에 대해 학계에서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 같은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치명타를 안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의혹 등 이른바 ‘3대 의혹 사건’은 이후 법정에서 모두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당시 인터넷과 누리꾼 때문에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 해도 법으로 정치상황을 원천봉쇄하려는 발상은 제1당이자 유력한 대선주자를 2명이나 가진 공당답지 않은 옹졸한 태도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의 개정안을 법상식에 맞는 것으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과거에 음해와 공작의 피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이를 성숙하게 극복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권자들은 표를 던질 것이다.

민동용 정치부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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