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보 참조없인 ‘데이터 판독불가’

  • 입력 2007년 3월 26일 02시 56분


《전시작전통제권(전시작전권)을 한미연합사령부에서 한국군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뜨거웠던 지난해 12월 정부는 국정브리핑을 통해 본보 칼럼 내용을 반박했다. 해당 칼럼은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8월 4일 본보에 기고한 ‘국방 잃고 자주 얻은들’이란 제목의 글. 이 전 장관은 이 칼럼에서 “한국군은 전략정보의 100%, 북한 신호정보(SIGINT)의 90%, 영상정보(IMINT)의 98%를 미군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국방부는 “한국군은 최신예 금강(고해상도 영상정보)·백두(신호정보) 정찰기, P-3C 대잠(對潛) 초계기, 군단 무인정찰기(전술 영상정보), 지상신호 정보기지를 통해 대부분의 전략 전술 신호정보와 전술 영상정보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일부 전략 정보를 미 측으로부터 제공받고 있으나 우리도 양적으로 대등한 수준으로 미 측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는 지난 십수 년간 수조 원을 투자해 구축한 우리 군의 정보 자주화 노력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스팸 정보’만 생산?

본보 취재팀이 지난 몇 달간 접촉한 군 소식통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방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군의 한 소식통은 “금강이나 백두 정찰기에서 수집한 데이터 자체는 정보 가치가 거의 없다”며 “미군에게서 받은 정보를 참조해야만 어느 정도 활용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는 금강·백두사업으로 도입된 장비들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매우 부정확한 탓이다. 금강사업은 도입 당시 군 당국이 정확도를 장담했으나 전문 영상 분석관조차 금강의 자료만으로는 “동해 어느 해상에 선박 2척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있다”는 정도밖에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

군 당국은 당초 금강사업을 통해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정보 50%, 고정된 시설에 대한 정보 50%를 수집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재 수집 정보의 80∼90%가 고정 시설에 대한 정보로 알려져 있다. 군부대 이동 등 작전에 가장 중요한 정보는 제대로 수집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백두사업 역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1998년 ‘린다 김 로비’ 사건(무기 중개 로비스트로 활동한 린다 김 씨와 당시 국방당국 고위 인사들의 스캔들)으로 백두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군 당국은 이미 사업비의 60%가 미국 군수업체에 건네진 상태라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당시 군의 특별평가단은 백두사업 탐지장비의 성능 가운데 방향 탐지 정확도나 통신 에러율 등 핵심 기능이 군의 요구 수준보다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찰기에서 지상 작전부대로 실시간 전송돼야 할 신호가 수시로 끊기고, 전송된 신호가 어느 지역에서 나온 것인지도 정확히 확인하기 힘든 것은 당시의 우려가 고스란히 현실로 이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정찰기 운용도 차질 빚어

2001년 9월 박세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금강사업 정찰기 시험 운영 기간에 정찰기 4대 가운데 2대가 고장 났고, 27차례에 걸친 시험비행 중에도 고장과 결함이 수차례 발견됐다고 폭로했다. 정찰기의 체공시간도 애초 기대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백두사업 정찰기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찰기 운용시간은 당초 계획과 크게 다르다고 한다. 애초 군 당국은 24시간 휴전선 부근에 백두 정찰기를 띄울 계획이었지만, 정찰기 4대 중 일부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현재 1대만 하루 4시간씩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다.

군 소식통은 “정찰기 4대로 24시간 운용한다는 계획 자체가 무모한 것”이라며 “미군은 신호정찰기 RC-135 24대를 도입해 24시간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군 당국은 금강·백두사업의 성능 향상을 위해 전산 장비 보수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이 사업비용(도입비용)과 맞먹을 것으로 추정돼 예산 낭비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두사업의 유지보수 비용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1억3800만 달러(약 1283억 원)에 이른다. 이는 백두사업 도입 비용(2200억 원)의 절반이 넘는 액수.

특히 군 당국은 2002년 백두의 탐지장비를 교체할 때 새로 필요한 소프트웨어 구매비용을 미국 업체에 문의한 결과 백두사업 도입 비용에 버금가는 액수를 요구했다고 한다.

문제는 군 당국이 사전에 이런 추가 비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

군 소식통은 “어떤 전산 장비를 도입하든 5년 정도가 지나면 전산 장비를 교체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새로 설치해야 하는데 사업 도입 당시 유지 보수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군 당국은 미국 업체와 구매계약을 하면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비용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문제 발생 시 비용 부담 소재 △소프트웨어 기술이전 방식 △보수인력의 교육 문제 등 꼭 포함해야 할 항목들을 계약서에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한국군은 전산 장비 수리나 성능 향상을 위해 미국 판매업체의 일방적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게 군 소식통들의 주장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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