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록 공개하고 싶다"… '2억수수 경찰' 석방에 檢 반발

  • 입력 2006년 12월 4일 11시 55분


"구속영장을 칠 엄두가 안 난다. 차라리 수사기록을 공개하고 싶다."

사행성 게임장 운영업자들로부터 2억 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 전 형사과장 김모 경정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최근 법원에서 기각된 데 대한 검찰의 반응이다.

검찰은 론스타 사건이나 게임 비리 사건 등과 관련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한때 '격앙'되거나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 마냥 한숨을 쉬며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다.

검찰은 게임장 운영업자인 임모(구속)씨 등 2명으로부터 자신의 인척 계좌로 매달 500만원씩 입금받는 방식으로 1억여 원을 수령하고 1억대 고급 외제 승용차를 받은 혐의로 김 경정에 대해 지난 주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병훈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일부 금전 및 이익(외제 승용차를 받았다가 돌려준 것)의 교부 사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월 500만원 수수 혐의 부분도 금전 대차 관계나 직무의 대가성 여부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 소식을 접한 서울중앙지검 게임비리 특별수사팀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며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검사는 "영장이 기각되리라고는 0.001%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락실을 단속해야 할 경찰간부가 친인척도 아닌 오락실 업자한테 '투자'라는 형식으로 돈을 빌려주고 원금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받는 게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일이냐"고 흥분했다.

특히 검찰은 김 전 경정이 업자에게 투자금을 돌려달라는 사람들을 자신이 근무하던 '경찰서 형사과장실'로 불러 합의를 종용하는 등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까지 영장실질심사에서 공개했는데도 영장을 기각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품권 발행업체로부터 동서의 계좌로 3500만 원을 받은 문화관광부 백모 국장도 아파트 분양 계약금을 지급하기 위해 빌린 돈이라고 주장했지만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례를 거론하며 영장 발부나 기각의 기준조차 들쭉날쭉한다는 지적도 했다.

이 차장검사는 "차라리 오해가 없도록 언론이나 일반 국민에게 수사기록을 공개하고 싶다. 미국식 배심제를 도입해 범죄사실 인정 여부도 판사가 아닌 국민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검찰 고위간부는 "이젠 구속영장을 청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면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 `조사가 미진하면 소명이 부족하다', `화이트칼라 범죄자는 도주 우려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영장을 기각한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경찰이 오락실 단속 정보를 흘려주는 대가로 2억대 뇌물을 받았다면 최저형량이 10년이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원의 잣대가 느슨해져 공직자 부패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 누구를 위한 공판중심주의인지 모르겠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