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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1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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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물론 여당의 반발까지 겹쳐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국회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어서 노 대통령의 지명 철회는 시점만 남겨둔 상태였다. 여야의 사실상 ‘협공’으로 벼랑 끝까지 밀리자 노 대통령은 결국 ‘전효숙 카드’를 포기했다.
▽야당의 협조 이끌어 낼 수 있을까=청와대는 이날 전 후보자 지명 철회를 발표하면서 정국 정상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노 대통령이 전날 제의했던 여야정 정치협상회의의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돌려막기식 인사 고집을 철회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정 운영에 전념하지 않으면 협조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 후보자 지명 철회는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은 것일 뿐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이 변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한나라당의 판단이다. 한나라당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연주 KBS 사장 임명 강행 등을 볼 때 노 대통령의 독선적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 비교섭단체 야 3당도 청와대에 쉽게 협조할 것 같지 않다. 특히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만을 상대로 정치협상회의를 제의한 데 대해 비교섭단체 야당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장이 이날 청와대의 여당 지도부 만찬 초청을 거부하며 반기를 든 사실이 알려진 직후 지명 철회 사실이 발표되자 정치권에선 “김 의장이 또 물 먹은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실제 이날 청와대가 지명 철회를 발표할 때까지 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기류를 전해 감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이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청와대와 여당을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실제 당내에선 전 후보자 문제와는 별개로 청와대와 선을 긋겠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레임덕 국면에 접어들면서 당-청 간에 카오스(혼돈) 상태가 초래될 것”이라며 “카오스가 와야 빅뱅이 가능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현상) 가속화 불가피?=노 대통령은 지금까지 인사를 철회한 적은 없었다. 일단 지명 절차를 밟은 뒤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불거진 ‘복병’에 걸려 중도에 교체한 적은 있었지만 임명도 하기 전에 자신의 카드를 거둬들인 적은 없었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최대 권력이자 최후의 힘인 인사권이 흔들림에 따라 레임덕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대통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서 지명을 철회해 줄 것을 요청받고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며 ‘전 후보자의 요청에 의한 결정’임을 강조한 배경엔 이 같은 위기감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레임덕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정을 장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최근의 외교안보라인 개편 등 야당과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인사를 강행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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