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치 눈물…최계열씨-납북 김영남씨 母子 상봉

  • 입력 200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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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냐” “엄마, 나 맞아”28년을 떨어져 있었지만 핏줄을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8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상봉장에서 고교생 때 납북됐던 김영남 씨(오른쪽)와 어머니 최계월 씨가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서로 얼굴을 비비며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이훈구  기자
“막내냐” “엄마, 나 맞아”
28년을 떨어져 있었지만 핏줄을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8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상봉장에서 고교생 때 납북됐던 김영남 씨(오른쪽)와 어머니 최계월 씨가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서로 얼굴을 비비며 오열하고 있다. 금강산=이훈구 기자
1978년 여름 물놀이를 갔다가 빠져 죽은 줄로만 알았던 17세 까까머리 고등학생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소년은 어느새 40대 중년이 되어 있었다. 최계월(82) 씨가 금쪽같은 아들을 다시 만나기까지는 2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8일 오후 2시 40분경 금강산호텔 2층. 납북자 김영남(45) 씨는 부인 박춘화(31) 씨와 딸 혜경(북한이름 은경·19) 씨, 아들 철봉(7) 군과 함께 어머니 최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경 휠체어에 탄 최 씨가 딸 김영자(48) 씨와 함께 상봉장에 들어서자 영남 씨가 달려갔다.

“어디 보자….” “엄마, 나 맞아. 막내 맞아.” “아유 우리 아들, 아유 우리 아들….”

뒤엉킨 모자(母子)는 오열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오래오래 사셔야지. 막내아들이 이제 효도 좀 할게.”

옆에 서 있던 누나 영자 씨도 “어릴 때와 너무 똑같아. 머리카락도 목소리도…”라며 영남 씨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남 씨는 “누나, 보고 싶었어”라며 꽉 껴안았다.

몇 번이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 얼굴을 비비다, 눈물을 쏟는 어머니에게 영남 씨는 “이 좋은 날 왜 우느냐”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좋구먼, 기쁘구먼”이라고 위로했다.

1978년 8월 5일 군산기계공고 1학년 재학 시절 전북 군산시 선유도해수욕장에서 납북된 영남 씨. 피랍 이후 김정일정치군사대를 졸업한 뒤 ‘김철준’ ‘김영수’ 등의 이름으로 대남공작기관인 북한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에 근무했으며 지금도 연구사(연구원)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탁자로 자리를 옮긴 영남 씨가 “막내아들 걱정 많이 했을 텐데, 불효막심한 아들이 절 드리겠다”며 큰절을 하자 최 씨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영남 씨는 부인 박 씨를 가리키며 “막내며느리를 소개할게”라고 했고, 박 씨는 최 씨에게 절을 올리며 “평양 며느리 절 받으세요”라고 말했다.

이어 손자 철봉 군과 손녀 혜경 씨도 할머니에게 큰절을 했다. 영자 씨는 혜경 씨에게 “TV로 많이 봤다”며 등을 두드렸고, 철봉 군의 머리를 만지며 “너희 아버지 어렸을 때 두상하고 똑같다”고 말했다.

가족 인사를 마친 영남 씨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아버지 언제 돌아가셨어?”라며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최 씨가 1986년에 사망한 남편의 사진을 보여 주자 영남 씨는 “막내아들 때문에…”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 씨는 “그래 막내아들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라며 목이 메었다.

김 씨는 29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피랍 경위 및 일본인 전처인 요코타 메구미와의 결혼과 그의 사망 경위, 일본에 송환한 메구미 유골의 진위 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금강산=공동취재단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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