議員사모님과 검은돈…“접근 쉽고 효과 높아”

  • 입력 2006년 4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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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박성범(朴成範) 의원의 공천 관련 금품 수수사건에서 실제 돈을 주고받은 ‘핵심 조연’ 4명은 모두 여성이다. 대형 사건의 뒤에는 어김없이 여자가 등장한다는 속설이 이번에도 확인된 셈이다. 김 의원의 부인에게 수차례에 걸쳐 4억4000만 원을 건넨 사람은 서울 서초구청장 공천을 희망한 한모 씨의 부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 측은 김 의원의 아들 결혼 축의금조로 5억 원을 갖다 줬으나 받지 않자 공략 루트를 바꿨다. 남자끼리의 거래가 성사되지 않자 부인끼리의 거래를 시도한 셈이다.》

박 의원의 경우도 비슷하다. 성낙합(成樂合·사망) 전 서울 중구청장 측은 인척인 환전상 장모(여) 씨를 통해 박 의원 부부에게 접근했다. 장 씨는 1월 박 의원 부부와 식사를 하고 헤어지면서 21만 달러(약 2억 원)가 든 케이크 상자를 박 의원 부인에게 떠안겼다. 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모피코트와 명품 핸드백 등을 보내기도 했다.

정치권 로비에 부인이나 여자가 등장한 사례는 전에도 많았다.

1996년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당시 4선 의원이던 이성호(李聖浩)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인은 대한안경사협회로부터 안경테 독점 부탁과 함께 1억7000만 원을 받아 구속됐다.

임창열(林昌烈) 전 경기지사의 전 부인 주혜란(朱惠蘭) 씨는 알선수재 혐의로 두 번이나 구속됐다. 1999년 7월엔 “잘 말해서 경기은행 퇴출을 막아주겠다”며 4억 원을 받았고, 2002년 7월엔 경기 성남시 분당 파크뷰아파트 건축허가를 사전에 내주는 조건으로 업자에게서 1억 원과 가구, 인테리어 등을 제공받았다.

1999년 법무부 장관 부인이 다른 장관급 부인들과 어울려 호화 쇼핑을 한 것이 발단이 된 ‘옷 로비’ 사건도 결국 고위층의 ‘안방정치’ 단면을 보여 준 것이었다.

안상수(安相洙) 인천시장의 ‘굴비상자 사건’에도 여자가 등장했다. 2억 원이 든 굴비상자가 안 시장의 집이 아닌 안 시장 여동생의 집으로 보내진 것. 안 시장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으나, 정치적으로 어려웠다.

이처럼 정치인의 부인 등 여성이 검은 로비의 루트로 활용되는 이유는 접근이 쉽고 효과도 좋기 때문이다. 정치인 부인은 단순한 내조 차원을 넘어 정치적 동반자이고, 남편에 대한 입김도 막강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지만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정치권에선 진리로 통하는 것.

자칫 검은 거래가 적발돼도 남편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하려는 심모원려(深謀遠慮)가 깔려 있기도 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부인이 돈을 받고 남편은 몰랐다고 하면 사건을 다루기가 참 어렵다”고 했다.

▼“당신은 나랏일만…” 대부분 궂은일 도맡아 내조▼

물론 부인의 내조에 어두운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의원 부인은 남편을 대신해 지역구를 누비며 바닥 여론을 듣고 이를 남편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내부 야당’ 역할을 하고 있다.

남편이 국회에 가 있는 동안 지역구민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것도 대개는 부인들의 몫이다. 가난한 정치인을 남편으로 둔 부인들 가운데는 실질적인 가장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도 꽤 있다.

이러다보니 눈물겨운 사례도 생긴다. A 의원은 지역구를 대신 관리하던 부인이 지역 인사들과 잦은 술자리를 하는 것을 놓고 갈등을 빚다 이혼했다. 남편 대신 온갖 행사에 참석하고 악수하다보니 허리디스크에 걸리거나 장에 탈이 나는 등 고통을 겪는 의원 부인들도 많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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