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對日 외교 기조 변하나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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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靖國)신사 내 박물관을 방문하고 싶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16일 발언은 그동안 노 대통령이 취해 온 대일(對日) 기조와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이유로 지난해 말 일본 방문을 취소하는 등 한일관계를 경색으로 몰고 온 노 대통령이 문제의 그 장소를 직접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신사 안에 있는 박물관인 류슈칸(遊就館)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가보고 싶었고, 일본이 초청하면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류슈칸은 군국주의를 선동하고 예찬하는 전쟁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한 ‘전쟁 미화 박물관’이다.

청와대 측은 류슈칸에 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언급은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신사 참배 반대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일관계 경색을 풀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난해 취소한 한일 ‘셔틀 정상회담’을 재개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도쿄(東京) 한복판에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면서 고이즈미 총리를 안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인 올해 9월까지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물론 얼어붙은 한일관계의 해빙도 요원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 말대로 일본이 초청장을 보내고 노 대통령이 이에 응하는 형태로 일본을 방문한다면 양국관계는 급속히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상당수의 한일 외교 당국자들은 한일관계의 회복이 절실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정상 간의 ‘냉기류’ 때문에 속앓이를 해왔다.

노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일본 측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뜻하는 바를 두 가지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과 류슈칸을 직접 보고 일본의 잘못된 과거를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쪽에 무게를 실으면서 양국 정상외교의 길이 다시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조심스럽게 보이고 있다.

어느 쪽이든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특유의 정면 돌파 방식이 외교에도 적용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야스쿠니신사에서 비롯된 한일관계 경색의 돌파구를 야스쿠니 방문으로 풀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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