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3년 대통령의 사람들]그들은 어디서 무엇하나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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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3대 총선에 당선돼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참모는 20대 후반의 386 운동권 출신 몇 명이 고작이었다. 16대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2001년 ‘자치경영연구원’을 설립할 때까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민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2003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취임 이후 대통령비서실을 거치면서 ‘노무현 사람들’은 ‘사단’으로 급팽창했다. 그동안 부침을 거듭하면서 이들 중 일부는 분가 독립하거나 멀어져 갔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 직계로 분류되는 인사가 청와대와 중앙부처의 1급 이상 공직자만 해도 320여 명 중 35명에 이르고 있다. 25일 노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아 ‘노무현 사람들’은 지금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 명암 엇갈리는 부산파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2003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때 구속됐다 풀려난 강금원(姜錦遠) 창신섬유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충북 충주시의 S골프장에 자주 나타난다.

그와 가까운 정치권의 한 인사는 “강 회장은 지금도 실세들과 잘 통하더라. 나도 청와대 소식을 들으려면 강 회장에게 묻는다. 강 회장은 청와대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돌아가는 얘기를 잘 알더라”고 그의 근황을 소개했다.

강 회장은 요즘도 노 대통령 측근 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등 ‘노무현 사단’ 내에서 의리 있는 후원자로 통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변호사 사무장으로, 지구당 사무국장으로, 집권 후 대통령총무비서관으로 20년이 넘게 지근거리에 있었던 최도술(崔導術) 씨는 지금 고향인 부산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3년 10월 SK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그는 노 대통령 쪽 사람들과는 일절 만나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겠느냐. 아무도 그의 근황을 정확히 모를 정도로 연락이 끊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비해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이호철(李鎬喆)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은 ‘영원한 측근’으로 건재하다.

1970년 여름 경남 김해시의 장유암에서 고시공부를 하다가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정상문(鄭相文) 대통령총무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가장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35년 지기(知己). 이른바 ‘양말 벗어 놓고 소주 마시는’ 사이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예전에는 “무현아”, “상문아”라고 말을 트고 지냈으나 정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온 뒤로는 ‘대통령님’, ‘정 비서관’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 금배지 단 우(右) 광재보다 빈손 된 좌(左) 희정이 더 세다?

노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과 안희정(安熙正)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의 처지는 크게 엇갈려 있다. 2003년 10월 썬앤문 대선자금 사건으로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을 사퇴하고 청와대를 떠난 이 의원은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어엿한 현역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최근에는 강원지사 선거 출마를 준비해 오다 24일 당직 개편에서 5·31지방선거 전략을 지휘할 당 전략기획위원장으로 기용됐다.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1년간 옥살이를 한 안 씨는 2004년 12월 만기 출소한 뒤 고려대 대학원 연구과정을 6개월간 다녔다. 최근에는 가족들과 함께 1개월 정도 인도에 배낭여행을 다녀왔을 뿐 두문불출하고 있다.

최근 신계륜(申溪輪)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자리가 빈 서울 성북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최근 안 씨를 만난 한 인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안 씨가 여러 가지 활로를 모색해 봤지만 이도 저도 되지 않으면서 이제 공직에 나가는 데 마음을 다 비운 것 같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하지만 여권의 내부 영향력 면에서는 안 씨가 ‘최강’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요즘도 종종 노 대통령을 만나고 있고 지난해 6월 노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을 했을 때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고려대 선배인 이병완(李炳浣) 대통령비서실장의 기용에도 보이지 않게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연세대 출신인 ‘이광재-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 라인이 이제는 고려대 출신인 ‘안희정-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 라인으로 바뀐 것은 안 씨의 영향력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있다.

○ 멀어져 간 사람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아 노 대통령을 적극 지원했던 정대철(鄭大哲) 전 민주당 대표는 대선자금 사건으로 구속됐다 사면복권된 뒤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로부터 1년간 초빙교수로 초청을 받아 지난해 말 출국하려 했으나 아직도 출발하지 못했다. 대선자금 사건으로 인한 구속 경력 때문에 미국 비자 발급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계륜 전 의원 역시 대선 당시 후보비서실장을 맡았고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에는 노 대통령의 인사특보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잃었다.

○ 노사모 이끌던 사람들은 어디?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李基明) 씨와 영화배우 명계남(明桂男) 씨는 지금은 열렬한 ‘정동영(鄭東泳) 지지자’로 변신했다. ‘국민참여 1219’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최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도 정 의장을 적극 지지했다.

영화배우 문성근(文盛瑾) 씨는 정치활동에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채 본업에 매진하고 있다. 명 씨와 문 씨는 최근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에 전혀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 누리꾼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영화인은 “현 정부를 지지한 입장에서 전면에 나서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기명 씨는 청와대에서 가까운 서울 광화문 근처에 있던 개인사무실을 얼마 전 국회의사당 근처의 여의도로 옮겼다. 이제는 ‘정동영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겠다는 뜻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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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논쟁 줄고… 與의원 팬클럽으로 ‘노사모 겨울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은 “우리의 공통점은 노무현 하나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다. 그러나 노사모 일각에서는 조금씩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2년 대선을 전후한 시기에 노사모의 주요 논객인 ID ‘일몽’ ‘윤이다’ ‘행탈’ ‘미풍’ ‘단재몽양’ ‘비토세력’ 등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성공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반면 최근 주요 논객인 ID ‘사랑바람’ ‘심우재’ ‘인치’ ‘수정’ 등의 글에서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 치열하게 벌이던 논쟁은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오히려 노사모 지역모임이나 황우석 교수 논문조작사건 등이 주제가 된다. 3년 전 30∼40명에 이르던 주요 논객도 최근에는 5, 6명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노사모 회원들이 열린우리당 소속 주요 정치인들의 팬클럽에 가입하면서 쇠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마저 제기된다.

2000년 노사모 창립 멤버인 김모(46) 씨는 “대통령의 말씀이 간혹 국민 정서와 동떨어질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비판을 해도 ‘저놈은 적’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며 “노사모 초기보다 글에 보이는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는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역시 노사모 창립 회원인 정메리(40·여) 열린우리당 원내 행정부국장은 노사모의 ‘쇠퇴론’에 대해 “노사모 출신들이 정치적으로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일 뿐 분열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이 위기에 처하거나 몰상식한 일들이 자행될 때는 10만 회원이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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