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컬럼]화해의 허상, 통일의 허상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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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양을 방문할 채비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에 내외의 두 전선에서 통 큰 화해정책을 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안으로 국내 정적과의 화해. 제1의 정적 박정희는 이미 타계했기에 직접 화해할 길은 없으나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발의한 것은 오직 그만이 높은 도덕적 고지에서 할 수 있는 화해의 결단이었다. 그때 나는 DJ의 재임 중 단 한번 그를 높이 평가한 칼럼을 썼으나 웬일인지 모 신문은 그 글을 싣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DJ의 10분의 1, 100분의 1만큼도 박 정권의 박해를 받지 않은 민주화 투쟁의 소영웅들이 들고일어나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DJ는 박정희 대신 자신을 죽이려 했던 또 다른 정적, 광주에서 국군을 시켜 국민을 대량학살하고 집권함으로써 이 땅의 젊은이들을 ‘국가허무주의’에 빠뜨리게 하고 그때부터 비로소 한국의 대학가에 반미 친북세력이 힘을 얻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신군부의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에게는 성공적인 화해를 시위했다. 두 정적은 DJ의 취임식 귀빈석에 초대됐고 그 후에도 민주화 투쟁의 ‘동지’ YS는 불참한 청와대 만찬에도 반드시 전임 대통령으로 초청돼 화기애애한 담소를 즐기곤 했다. 광주의 영령들이 하늘에서 그 광경을 굽어본다면 뭐라 할 것인지….

두 번째는 밖으로 휴전선 북쪽의 적에 대한 화해. 2000년 6월 DJ는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로 평양을 첫 ‘국빈방문’해 공항의 붉은 카펫 위에서 김정일과 포옹을 했다. 햇볕정책의 정점이라 할 DJ의 방북과 남북 공동성명서 서명으로 한반도엔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평화통일이 가시권에 들어온 듯 사람들은 들떠 환호했다. 그러나 그 뒤의 한반도 정세의 전개는 민망스럽기만 하다. 어느 대학의 강모 교수에 앞서 DJ는 스스로 재임 시에 6·25전쟁을 “실패한 통일전쟁”이라 한 일이 있다. 이번에는 DJ가 김일성과 비슷한 실패를 저지른 것만 같다. 6·25전쟁으로 무력통일을 도득(圖得)하려 한 김일성은 평화를 도살하고 통일도 도득하지 못했다. DJ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평화통일을 도득하려 했으나 평화도 굳히지 못하고 통일도 앞당기지는 못하고 있다.

2002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대회가 끝날 무렵 방한한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에게 DJ가 햇볕정책 때문에 이런 국제대회를 평온하게 치르고 있다고 자랑하던 하필이면 그날 북한은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월드컵 개최지 한국의 서해에서 우리 함정에 발포하여 사상자를 냈다. 그보다 더욱 민망한 것은 6·15공동선언의 화해 이벤트 이후 북한은 되레 핵보유국임을 선포하고 나서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평화의 비둘기는 더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6·25전쟁이 한반도의 평화도 통일도 잡치고 만 것처럼 6·15공동선언 역시 한반도의 평화도 통일도 도득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6·15공동선언으로 그래도 통일의 길은 열리지 않았느냐고? 만약에 DJ 주변에서 그렇게들 믿는다면 그건 DJ를 죽이려 했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같은 오류를 범한 사람 꼴이 될 것이다. 평양에 밀행한 이후락은 7·4남북공동성명서를 들고 와 통일의 대업에 큰 초석을 마련한 듯 뽐내고 많은 사람도 그렇게 믿고 환호했다. 그러나 7·4공동성명은 통일이 아니라 한반도의 분단을 처음으로 사실(de facto)의 차원에서 공식화한 기록에 불과하다.

6·15공동선언은 더 나아가 한반도의 분단 및 양국(兩國)체제를 국가원수의 차원에서 사실의 차원만이 아니라 법률적 정당성(de jure)의 차원에서도 확인한 공식기록이나 다름없다. 그로 해서 공고해진 것은 통일의 길이 아니라 분단 고정의 길, 양국 체제 고착화의 길이다.

이번에 다시 DJ가 방북하게 된다면 그는 무얼 도득하려는 것일까. 권력이 없는 그가 북의 독재권력과 협의해서 한반도의 평화나 통일에 무슨 비책을 강구하려 한다면 환상이다. 바라건대 “말이 통한다”는 북의 ‘통 큰’ 지도자를 설득해서 북녘의 불쌍한 백성들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의 방북은 완전한 허사가 되진 않을 것이다. “백성을 하늘같이 섬긴다”는 것이 DJ의 평시 정치구호는 아니었던가.

최정호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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