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한미관계 현안분석]‘동북아 균형자론’ 혼란만 불러

  • 입력 2006년 2월 1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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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국 내에서의 북한 압박 움직임을 거론하며 “한미 간에 이견이 생길 것”이라고 사실상 경고했다. 또 지난해 2월 국회 국정연설에서는 대미관계에 대해 “외교 당국자들에게 ‘할 말을 하고 따질 것은 따지라’고 한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3년 동안 한미관계는 이 같은 ‘말’이 나올 때마다 갈등을 겪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실제 협상에서 미국이 추진한 5개 외교 현안의 경우 목표치의 3분의 2가량이 달성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들 현안은 본보가 전문가 10명의 자문을 거쳐 선정했다.》

■ 미국이 추진한 현안

▽전략적 유연성=전문가 10명이 분석한 진척도 평균은 76%. 주한미군을 한반도 외 다른 지역으로 투입하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의 ‘개념’을 한국 정부가 수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밝혔다.

한미는 지난달 이 같은 한국의 방침이 포함된 공동성명 채택에 합의했다. 그러나 문제는 노 대통령의 지난해 3월 발언이 전략적 유연성 자체에 대한 반대라는 인식을 미국에 심어 줬던 것.

김태효(金泰孝) 성균관대 교수는 “국민에게 한국의 ‘자주성 고수’라는 명분을 계속 내세우려다 보니 한미 간은 물론 집권층 내부에서도 마찰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미 간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 문제를 놓고 청와대에서 관련 문건이 유출되는 등 정권 핵심부에서 논란을 빚게 된 것도 ‘자주외교’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라는 것이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미국의 목표치에 절반가량 도달했다는 게 전문가 10명의 분석이다. 최근 동북아지역 외에서 펼쳐지는 PSI 훈련을 참관하기로 한 게 미국의 PSI 구상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김기정(金基正) 연세대 교수는 “한국 정부의 방침은 적극적 참여가 아니라 당분간 참관자(observer)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진척률은 20%”라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가 PSI의 목적엔 이견이 없으면서도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북 금융제재=PSI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에 나서게 된 동기를 이해하고 있지만 PSI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미국 정부에 ‘융통성’ 있는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김우상(金宇祥) 연세대 교수는 “한국 정부는 위조지폐 제조를 북한 당국이 주도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라크 파병=미국이 추진한 현안 중 진척도(79%)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남창희(南昌熙) 인하대 교수는 “한국 정부가 이라크 파병처럼 대외 문제와 연관된 외교 현안은 미국에 양보하고 대북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갖겠다는 ‘바터’ 전략을 미국에 암시하며 이라크 파병 문제를 ‘한미동맹 관리’ 차원에서 다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태효 교수는 “파병 결정 후 실행까지 1년이 넘게 걸렸고 파병활동도 규모에 비해 소극적이어서 파병 효과가 반감됐다”고 지적했다.

▽스크린 쿼터=많은 전문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결국 미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홍규덕(洪圭德) 숙명여대 교수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고 한국의 영화시장이 성장한 점을 감안한다면 스크린쿼터 축소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 한국이 추진한 현안


노무현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추진해 온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 전문가들은 각각 34.0%와 17.5%의 진척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해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정책 측면에서 정체가 불분명해 해프닝으로 끝나 버린 정책”이라고 말했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개념이나 이론 측면에서 상대국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상대국들이 한국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김우상 연세대 교수도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애매한 표현으로 오히려 주변국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일영(金一榮) 성균관대 교수는 “말만 많았지 성과는 거의 없이 꼬리를 내린 대표적인 정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고, 김영호(金暎浩) 성신여대 교수는 “균형자론은 유산됐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절반 이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지만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주변국들에 알렸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선 원론적으로 타당한 시도지만 북핵 위기 등의 안보 상황에서 환수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올해 안에 ‘로드맵’을 만들기로 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태효 교수는 “원칙 자체는 틀린 게 없지만 아직 이에 대한 대비가 완벽하지 않은 시점에서 환수 주장은 이른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인택(玄仁澤) 고려대 교수는 “이제 문제 제기를 한 수준으로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고, 김영호 교수는 “미국을 설득할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 공동추진 현안

한미 양국이 함께 추진한 4가지 현안은 대체로 양측의 입장이 균형 있게 반영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해 4월 타결된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한국 측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전문가들 평가의 평균치는 ‘50 대 50’으로 나타났다.

양국의 입장이 균형 있게 반영됐다는 평가는 분담금을 전년도보다 8.9% 줄어든 6804억 원으로 합의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는 “예전에는 늘 미국이 유리한 결과를 얻었으나 최근 협상에서 다소 한국의 입장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작전계획 5029 문제는 작전계획으로 격상시키려는 미국의 의지를 한국이 꺾어 개념계획으로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한국의 의견(59%)이 많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개념계획은 작전계획의 전 단계로 군사적 상황에 대비한 절차를 담은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한국의 입장이 일단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제의로 양국이 함께 추진하게 된 용산기지 이전 문제는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의 의견이 적절히 반영됐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앞으로 이전 비용을 놓고 양국이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이전 비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될 올 6월경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가 심각하게 전개될 수 있다”며 “정부의 태도 여하에 따라선 2007년 대선에서 중요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양측이 동시에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협상을 시작했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한미동맹이 군사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포괄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분석 및 평가에 참여한 교수 명단▼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김우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남창희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박용옥 한림대 국제학대학원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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