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노선 갈등 서둘러 ‘불끄기’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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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한 국가 기밀문서가 여당 의원에 의해 공개되고, 이를 둘러싸고 여권 인사들 간에 상호 공방전이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청와대가 3일 공개 경고를 발한 것이다. 상황은 일단 수습국면에 들어간 듯하지만 이미 내부 갈등이 심각해진 상태여서 적지 않은 후유증이 있을 전망이다.》

▽“최재천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달라”=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한미 협상 내용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등의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의 1, 2일 폭로에 대해 “대통령은 대미 협상 초기부터 모든 과정을 챙겼다”고 일축했다.

김 대변인은 “대통령은 이 문제가 제기된 초기부터 관여해 방향을 설정했고, 이를 연설에 언급하기도 했다. 한미간 최종 합의 문안도 대통령이 직접 검토한 것”이라며 “이는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발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이 3급 기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이종석(李鍾奭) NSC 사무차장 등이 주한미군의 역외 전출 시 ‘사전협의’의 명문화에 실패하는 등 대미 협상에서 국익을 제대로 관철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데 대한 전면 부인이다.

김 대변인은 “최종 합의된 내용은 미국만의 의도대로 되지도 않았고, 한국 측의 의도대로만 되지도 않았다”며 “상호 현실을 존중해서 나온 적절한 합의이며 서로의 현실적 조건을 판단하고 고려해 나온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으로 해석해 필요 이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모적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며 “패배주의적 문제제기는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렇게 강경한 방침을 공개 천명한 것은 최 의원의 폭로를 둘러싸고 핵심인사들끼리 자중지란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현 상황을 방치할 경우 국정운영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권 난맥 미봉(彌縫)될까=청와대의 강력 경고에 대해 최 의원은 3일 “당분간 가만히 있겠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상황이 완전히 진정됐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는 관측이다. 이미 여권 내부의 전선(戰線)이 첨예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연이틀 문건 공개를 통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혼란에 대한 책임론까지 제기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거취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며 사실상 이 내정자에게 사퇴 압력을 넣은 것.

최 의원이 이 내정자를 겨냥한 이면에는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내연(內燃)해 온 ‘강성 자주파’와 ‘온건 자주파’의 오랜 갈등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최 의원의 배후에는 ‘강성 자주파’가 있으며, 이들은 “현 정부가 집권 초 미국에 할 말을 하겠다고 호언했지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에서 보듯 결국 미국이 원하는 대로 끌려왔다”는 입장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현 정부의 대미정책이 이처럼 ‘변질’된 핵심에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온건 자주파’인 이 내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 이 내정자가 노 대통령의 눈과 귀를 독점해 외교안보정책을 농단해 왔다는 것이 ‘강성 자주파’의 주장이다.

‘강성 자주파’에는 청와대 일부 386과 이 내정자의 NSC 운영에 불만을 품은 NSC 내부 세력이 포함돼 있다는 게 여권 내의 분석이다. 이번에 최 의원에게 청와대 내부문서를 유출한 쪽이 이들 청와대 내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제3자의 시각에서는 ‘강성 자주파’든 ‘온건 자주파’든 대미정책 등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 의원의 폭로 이후 여권의 내분 양상을 보면 본질적인 노선 차이라기보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 투쟁의 측면이 큰 듯하다”고 평가했다.

투쟁의 본질이 무엇이든, 그 결과는 일단 이 내정자의 승리로 귀결된 듯하다. 노 대통령이 직접 최 의원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기 때문이다.

여당 내에서는 이번 일이 이념 다툼보다 최 의원의 돈키호테적인 성격이 빚은 사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이화영(李華泳) 의원은 3일 이 내정자와 당 통일외교통상위원 간의 간담회 후 “최 의원의 주장에 오류가 있는 것 같더라. 참석 의원들은 이 내정자의 설명에 대부분 공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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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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