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재]‘낙하산 총재’ 수비 못한 프로야구단

  • 입력 2005년 12월 28일 03시 01분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26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사실상 차기 총재로 내정됐다. 이상국 KBO 사무총장은 “각 구단에 일일이 확인한 결과 총재로 추천할 분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세간의 물망에 오른 신 전 부의장을 직접 만나 의사를 묻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신 씨는 그동안 프로야구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정치인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10년 선배이자 정치적 동지다.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될 이유다.

1998년 말 시작된 민선 총재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됐다.

그런데 다시 관선 총재 시대로 복귀하는 것이 반드시 정치권의 입김 때문일까. 본질적인 문제는 프로야구단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총장이 말한 대로 8개 구단은 하나같이 총재 후보를 내지 못했다. 시계를 7년 전으로 돌려보자. 정치권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가 철새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8개 구단은 민선 총재를 뽑기로 뜻을 모으고 박용오 당시 OB 구단주를 첫 민선 총재로 선출했다. 구단주들은 ‘앞으로 총재는 구단주 중에서 선출하자’는 결의까지 했다.

그러나 박 총재의 첫 임기가 끝난 2000년 3월. 총재를 맡으려는 구단주는 아무도 없었다. 안 그래도 바쁜 구단주들은 총재직을 고사하기에 바빴다. 선수협 파동 등에 지친 박 전 총재는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떠밀리듯 두 번째 임기를 맡아야 했다. 3년이 지난 뒤 상황은 또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말까지 총회가 열리면 얼굴이라도 내비쳤던 구단주들은 언젠가부터 서서히 구단주 대행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2002년 이후 총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올해 7월 두산의 형제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후 박 전 총재의 퇴임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설령 임기를 끝까지 채웠더라도 내년 3월에는 물러나게 돼 있었다.

그러나 야구계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대안도 마련하지 않고 낙하산을 막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무리다.

이러니까 KBO가 겉으로는 반발하는 것 같지만, 내심으로는 ‘바람막이용 낙하산 거물’을 바라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자세라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KBO 총재 자리는 ‘세간의 물망에 오른’ 인사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이헌재 스포츠레저부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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