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신건 사전영장]林씨, 감청대상 전화번호 대량입력

입력 2005-11-15 03:08수정 2009-09-3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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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辛원장과 林특보
2001년 10월 당시 신건 국가정보원장(왼쪽)과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특보가 청와대 오찬간담회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이들이 과연 구속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두 전직 국가정보원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고유 임무를 저버린 채 국민의 사생활을 엿듣는 도청 범죄를 총지휘한 것으로 집약된다.

▽“도청의 최고 책임자는 두 전직 원장”=이들은 “불법 감청을 하지 말라”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거듭된 지시를 정면으로 거스르면서까지 도청을 계속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예산을 써가며 불법 감청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다.

임 전 원장은 국정원이 유선중계통신망을 이용한 감청 장비인 R2를 개발하자 감청 대상 번호를 대량으로 입력해 본격 사용하도록 했다. 2000년 5월에는 김은성(金銀星·구속기소) 전 국정원 2차장이 “원장님 휴대전화도 도청될 수 있다”며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인 카스(CAS)의 운용 지침 제정을 요청하자 이를 승인했다.

신 전 원장은 R2를 활용해 국내 주요 인사에 대한 도청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했다.

임 전 원장은 그동안 대북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국내 정치에도 상당히 관여했으며 정치 현안이 있을 때는 도청을 적극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 전 원장은 도청을 묵인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수사팀 내부에서는 두 사람 중 한 명에 대해서만 구속 영장을 청구한다면 그 대상자는 임 전 원장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황장엽과 이철승 씨 통화도 도청=김 전 차장의 첫 공판에서 국정원이 2001년 초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대표적인 보수우익 인사인 이철승(李哲承) 씨 간의 전화 통화를 도청한 사실이 새로 공개됐다. 이 씨가 황 씨에게 전화를 걸어 “신년하례식도 할 겸 떡국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고 황 씨가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특별보좌관이었던 최규선(崔圭善) 미래도시환경 대표에 대한 도청 내용도 임, 신 전 원장에게 보고됐다고 김 전 차장은 증언했다.

김 전 차장은 “2000년 6월 통화 감청을 통해 최 씨가 직위에 안 맞게 당시 임 원장을 평가하는 내용을 보고했더니 임 원장이 최 씨에 관한 모든 내용을 내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신 원장이 부임한 뒤에는 최 씨가 한 여성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개각 인사에 직접 관여했다고 자랑하는 내용을 도청해 신 원장에게 보고했다고 김 전 차장은 말했다.

김 전 차장은 당시 임 원장이 정치권 인사들을 순화시킬 것을 자신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6월 민주당 공천 문제에 불만이 있던 장성민(張誠珉) 당시 민주당 의원을 만나 “너무 급격한 개혁을 하지 말라”는 말을 건넸다. 장 의원은 “누구 지시를 받고 이러느냐. 공직자라면 객관적 시각을 가져 달라”고 충고했다고 진술했다.

‘안풍 사건’과 관련해 김 전 차장은 주진우(朱鎭旴) 당시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을 만나 보라는 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직접 협조를 부탁한 적이 있으며, DJ의 셋째 아들 김홍걸(金弘傑) 씨의 집 소송 문제로 이신범(李信範) 전 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모르쇠’ 일관… 국정원 발표에 집단반발도 ▼

임동원,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은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직전까지도 불법 감청 개입 혐의를 철저히 부인해 왔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임, 신 전 원장은 도청을 주도한 것으로 판명나면서 이들의 거짓말 행진은 끝내 법의 심판대로 옮겨가게 됐다.

임, 신 전 원장은 8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이 도청을 했다고 발표한 후부터 최근까지 “도청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나아가 이들은 김승규(金昇圭) 국정원장을 만나 “국정원 발표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며 집단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후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개입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임 전 원장은 지난달 소환 조사 이후 귀가하면서 “도청을 보고받은 적도 없고 묵인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신 전 원장은 직접 증거인멸에 나서기도 했다. 국정원 감청부서 국장이 검찰 조사에서 도청을 시인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신 전 원장은 9월 24일 주요 전직 국정원 간부들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는 이수일(李秀一) 전 차장과 김 전 차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왜 시인했느냐. 다음번 검찰 조사 때 진술을 번복하라”고 김 전 차장을 질책했다.

그는 또 “다음 조사 때 ‘도청을 한 것이 아니라 안보 관련 첩보를 합법적으로 수집하는 과정에서 국내 인사의 이름이 나왔다’고 진술하라”고 종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14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두 전직 원장이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변화를 보이지 않아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임동원 DJ정부 햇볕정책 전도사- 신건씨 檢호남인맥 대부 ▼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은 누구인가.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불리는 임 씨는 육사 13기 장군 출신이다. 그는 나이지리아와 호주 대사를 거쳐 1990년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를 지냈다.

임 씨는 1995년 아태재단 사무총장에 취임해 DJ와 인연을 맺었고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거쳐 1999년 12월부터 2001년 3월까지 국가정보원장을 맡았다. 통일부 장관을 두 차례나 지내며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로 자리를 옮겨 대북정책을 총괄했다.

DJ 정부 마지막 국정원장인 신 씨는 검찰 호남 인맥의 대부로 통했다. 대구경북(TK) 출신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민다던 5, 6공화국 시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냈다. 그는 문민정부 때 법무부 차관을 지냈지만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인 정덕진 씨와의 친분 시비가 일면서 중도하차했다. 하지만 1997년 대선 전 국민회의에 입당해 DJ 비자금 사건을 해결하면서 급부상해 국정원 1차장, 2차장을 거쳐 2001년 3월∼2003년 4월 국정원장을 지냈다.

이들 두 사람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국정원 직원들은 적잖은 심리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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