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先軍’ 속에 굶어죽는 아이와 북송되는 탈북자

  • 입력 2005년 10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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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창건 60주년 기념일인 어제, 한국에 오려고 8월 말 중국 옌타이 한국국제학교에 진입했던 탈북자 7명이 끝내 중국정부에 의해 북송(北送)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는 서울에 온 유엔아동기금(UNICEF) 평양사무소 부대표에게서 “해마다 북한의 7세 미만 어린이 4만 명이 심각한 영양결핍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증언을 들었다.

그런데도 북은 당 창건 기념행사인 중앙보고대회에서 “변함없는 선군(先軍)사상으로 강성대국을 건설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늘의 북한체제가 얼마나 지독한 자기모순과 시대착오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 준다. 어린 아이들이 굶어 죽어 가고, 먹고살기 위해 국경을 넘은 주민들은 외국 관헌에 의해 끌려오는 참혹한 상황에서도 ‘군(軍) 제일주의’를 외치는 나라가 21세기 문명세계에 또 어디 있는가.

이런 북을 대하는 노무현 정부와 일부 진보세력의 인식도 심각하다. ‘선군’은 오직 김정일 1인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북녘 주민들의 삶이 저토록 피폐해진 것도 ‘선군’을 위해 국가자원을 있는 대로 군에 쏟아 붓기 때문임을 알면서도 누구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먹고살려고 사선(死線)을 넘는 북녘 동포들을 ‘기획 탈북’이라며 수용하기를 꺼리고, 해마다 엄청난 양의 식량을 제공하면서도 주민들에게 식량이 제대로 나눠지는지 조사하자는 말조차 못 꺼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남측 중고교생 두발 제한은 인권 침해라고 거론하면서도 북한 주민의 반(反)인권 참상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통일부는 북한의 소년소녀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출연하는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러 가는 교사와 공무원들의 방북까지 방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민족’을 부르짖고, 김정일 체제의 기만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수구(守舊), 반(反)민족주의자’로 몰아붙인다. 이제 위선과 기만의 탈을 벗어버릴 때가 됐다. 굶어 죽어 가는 북녘 아이들의 눈망울을 외면하고 언제까지 북에 대한 ‘내재적 접근’만 되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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