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회 정보委보고]“DJ정부 시절 R-2장비로 불법감청”

  • 입력 2005년 8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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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국정원장 답변 상의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이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 도청 논란 등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 국정원의 한 직원과 상의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金국정원장 답변 상의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이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 도청 논란 등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 국정원의 한 직원과 상의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김승규(金昇圭) 국가정보원장은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정원에 의한 불법 감청(도청)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김 원장은 그러나 DJ 측의 반발을 의식한 듯 “과거와는 달리 도청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추가 확인된 도청의 흔적=김 원장은 “DJ 정부 시절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를 사용한 직원들이 대공 수사나 안보 목적과 관계없이 일부 임의로 도청을 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R-2는 감청 대상 전화번호를 국정원에서 임의로 입력하거나 변경이 가능했다는 것. R-2는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간 통화내용을 직접 잡아낼 수 있는 ‘휴대전화 감청장비(CASS·카스)’와 달리 유선전화와 휴대전화 간의 통화내용을 감청할 수 있는 장비다.

이는 8월 5일 발표에 비해 보다 구체화된 내용이다. 당시에는 “1996년부터 디지털 휴대전화가 상용화되면서 감청 장비를 자체 개발해 1998년 5월부터 2002년 3월까지 도청에도 일부 활용했다”고만 밝혔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이 장비 등을 이용해 정치인까지 광범위하게 도청했는지가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원장은 “누가 누구에게 누구를 대상으로 감청할 것을 지시하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치인 도청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R-2를 활용한 도청은 전체 감청 건수의 10% 정도이다. 120회선에 불과해 성공률은 0.4%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는 도청 성공률이 미미했음을 강조한 것이지만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도청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파악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정원은 카스를 2000년 9월 폐기했다는 8월 5일 발표와는 달리 이 장비를 2001년 4월까지 사용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국정원은 “카스가 대공, 마약사범 수사 등에 주로 사용됐지만 장비 사용 신청 시 영장청구 등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 도청에 사용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도청으로 볼 수 있는 사례는 10여 건 정도”라고 말했다.

▽“DJ 정부 무차별 도청 아니다”-DJ 비호 논란=김 원장은 “관련 직원들이 진술을 회피해 도청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DJ 정부 시절에도 도청이 이뤄졌던 흔적이 일부 드러났으나 과거와 달리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별성 또한 분명히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R-2를 이용한 전방위적인 도청 개연성을 시사한 뒤 무차별적 도청은 없었다고 단정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보기관의 생리상 상부의 지시 또는 묵인 없이 직원이 자기 판단에 의해 ‘임의로’ 도청 행위를 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날 정보위 비공개 회의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은 “누구의 지시로 도청 행위가 이뤄졌는지 모르겠다고 해 놓고 DJ 때는 무차별적 도청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더니 김 원장이 아무런 말도 못하더라”며 “무차별적이 아니면 소수만 도청했다는 것이냐. 이는 더 심각한 문제다”고 말했다.

DJ 측 최경환(崔敬煥) 비서관은 “분명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 국정원이 너무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DJ 정부 ‘미림팀’ 존재 출범 직후 파악=미림팀의 존재는 DJ 정부 출범 직후 새 안기부 수뇌부에 의해 이미 파악됐던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국회 정보위 소속의 한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2002년 10월 28일 국회 정보위가 열렸을 당시 신건(辛建) 국정원장의 발언 내용을 공개했다.

한 의원이 ‘국정원이 아직도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면서 국정원의 도청 여부를 캐묻자, 신 원장은 “내가 1998년 안기부의 국내담당 차장으로 와보니 무슨 미림팀이라는 게 있어서 이런 짓(도청)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이것을 해체하라고 했다”고 답변했다는 것.

이는 DJ 정부의 안기부 수뇌부가 미림팀에 의한 도청을 처음부터 알았으며, 2002년 신 원장의 발언을 통해 미림팀의 존재 사실을 안 국회 정보위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국정원, X파일 존재 지난2월 靑에 개략적 보고”▼

국가정보원이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의 비밀도청팀인 ‘미림팀’과 ‘X파일’의 존재를 2월 청와대에 개략적으로 보고했다고 주장해 온 한나라당 권영세(權寧世) 의원은 25일 국회 정보위원회가 끝난 뒤 “국정원이 대통령민정 및 홍보수석비서관에게 총 6번의 보고를 했다고 확인해 줬다”고 밝혔다.

권 의원에 따르면 2월 4일 MBC의 대선자금 보도 동향에 대한 개략적인 첫 보고가 올라갔고 3월 4일과 6월 8, 9일 ‘삼성이 중앙일보를 통해 이회창 씨에게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내용을 MBC에서 추적 중이다’ ‘통신비밀보호법 때문에 방송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등의 보고가 전해졌다는 것.

이후 6월 15일 국정원은 ‘미림팀에서 불법 감청과 녹취록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옛 안기부 간부가 MBC에 팔아넘기려 한다’는 구체적 정황 증거를 확보해 2장짜리 세부 보고서를 17일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어 7월 13일에는 국정원에서 녹취록과 테이프를 입수해서 내용까지 분석한 뒤 15일 조기숙(趙己淑)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에게 보고했다는 게 권 의원 측의 설명이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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