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도청 청산 발언…‘原罪論’ 내세워 DJ 비켜가기?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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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국무위원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불법 감청(도청)은 군사독재의 불법적인 도구”라고 규정했다. “정경유착은 군사독재가 만든 불법적 구조”라는 말도 곁들였다.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와 국가정보원의 도청 사실이 지금 드러나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원죄(原罪)는 과거 군사정부에 있다는 얘기였다.

노 대통령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도 “도청은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뿌리가 있다. 이 뿌리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들은 지금 깨끗한 척하고 있다. 폭력적인 권력으로 (도청 사실을) 깊이 묻어 두고 이제 (공소)시효를 다 넘기고 자기들은 아닌 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과거의 원래 뿌리를 만든 사람들이 지금 이파리 몇 개 보고 흥분하고 있는 상황 아니냐”고 구 여권의 맥을 잇고 있는 한나라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이 정보기관의 도청 문제를 놓고 ‘뿌리와 이파리’론을 편 것은 다분히 DJ 측을 무마하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호남 민심의 이탈 양상이 가속화하면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고 노 대통령의 힘도 급속도로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큰 틀에서 도청 문제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밝힌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김 전 대통령과의 대립이나 갈등 식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반면 5일 국정원이 DJ 정부 때에도 도청이 이뤄졌다고 발표한 이후 DJ 측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崔敬煥) 비서관은 9일 “(YS 정부 때의) 미림팀 도청은 흐지부지되고 하지도 않은 일을 국민의 정부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본말이 뒤집혔다. 김 전 대통령의 최근 심기가 아주 좋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그동안 도청은 짐작만 되고 밝혀진 바가 없었는데 이번에 과거 청산 차원에서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국가 불법 행위의 전모를 밝혀 (도청이) 다시 되살아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검찰의 도청 수사에 ‘과거 청산’의 의미도 부여했다.

야 4당이 공동 발의한 특별검사제 법안에 대해선 “무원칙한 특검 주장은 곤란하다. 헌법이 정한 국가의 제도가 우선이고 이를 적용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 특검을 하는 것이다”라며 거듭 반대 견해를 밝혔다. 따라서 9월 정기국회가 열려 특검 법안이 통과된다면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거부권 문제를 거론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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