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언론간섭 않겠다더니… ‘靑-IOC-김운용 ’ 기사삭제 논란

  • 입력 2005년 6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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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7월호에 게재 예정이던 ‘자크 로게-청와대-김운용의 3각 빅딜’ 기사가 외압에 의해 삭제됐다는 월간중앙 기자들의 성명이 일파만파의 파문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정부는 정부의 길을 갈 테니 언론은 언론의 길을 가라”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발언을 비롯해 언론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고 있다고 공언해 온 청와대가 언론사 대표를 만나 기사 삭제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월간중앙 기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의 윤후덕 비서관이 16일 외부에서 월간중앙 김진용(金津龍) 대표이사를 만나 “국익을 고려해 기사를 빼 달라. 꼭 실어야겠다면 7월 열릴 예정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이전까지 보도를 연기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대표는 청와대의 요청을 거절했고 이어 다음 날(17일) 오후 4시경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정모 상무가 김 대표를 방문했다. 5시간 뒤인 오후 9시 김 대표의 기사 삭제 지시가 떨어졌다. 또 정 상무가 방문하기 직전 모기업인 중앙일보사 고위 관계자가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측은 윤 비서관이 김 대표를 만난 것은 (3각 빅딜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전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보도가 나가기 전에 언론사와 사전 접촉하지 말고 오보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응해 온 청와대가 기사와 관련해 언론사 대표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청와대는 삼성 쪽에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 상무 역시 “김 대표와 개인적으로 친해 찾아갔을 뿐 기사 얘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23일 본보 기자와 만나 “할 얘기가 없고 정 상무와는 친한 사이여서 만난 것뿐”이라면서도 “‘선수’들끼리 잘 알면서 뭘 더 이상 묻느냐”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당사자들의 이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사 삭제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가시지 않는다. 이번 기사 삭제에 앞서 월간중앙 6월호에 실렸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대통령 기망했나’라는 기사도 외압에 의해 삭제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NSC 관계자가 월간중앙을 방문해 기사 삭제를 요청했고, 이어 이종석(李鍾奭) NSC 사무차장도 마감 전날 김 대표를 직접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김 대표는 기사 게재를 강행해 인쇄까지 마쳤으나 4만 부를 폐기하고 이 기사를 뺀 뒤 다시 인쇄했다. 당시 월간중앙 기자들이 이를 문제 삼으려고 했으나 재발 방지 약속을 받고 마무리했다.

이처럼 청와대, 중앙일보사 및 삼성 관계자가 잇따라 월간중앙 대표와 접촉한 뒤 기사가 삭제됐다는 정황을 살펴볼 때 이들이 사전 교감을 갖고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중앙일보 회장으로 있다가 주미대사로 기용된 홍석현(洪錫炫) 씨를 매개로 한 정부와 중앙일보의 ‘특수 관계’, IOC 위원인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위신 등을 고려해 청와대가 중앙일보사와 삼성을 움직이게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청와대가 외압을 가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접촉 다음 날 삼성이 기사 삭제를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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