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의혹]미완의 국책사업? 정치用 프로젝트?

  • 입력 2005년 5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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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복씨 이틀째 조사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이 26일 오전 이틀째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 성남시 한국도로공사 본사 감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 사장 뒤로 행담도를 가로지르는 서해대교의 전경을 담은 대형패널이 보인다. 사진 제공 문화일보
김재복씨 이틀째 조사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이 26일 오전 이틀째 조사를 받기 위해 경기 성남시 한국도로공사 본사 감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 사장 뒤로 행담도를 가로지르는 서해대교의 전경을 담은 대형패널이 보인다. 사진 제공 문화일보
지난 며칠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충남 당진군 행담도 개발사업 의혹은 민간섹터의 사업에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발을 깊이 담가 권한 남용 시비까지 초래한 희한한 사건이다.

이들 핵심 인사는 모두 “서남해안개발사업(S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초대형 국가사업을 그렇게 어설프게 추진하려고 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권력형 비리는 아니다?=현재로선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단정할 만한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또 행담도 개발사업에서 한국도로공사가 돈을 떼인 것도 없다. 당사자들 간에 금품이 오갔는지도 아직까진 확인된 바 없다.

그러나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시대위원회가 행담도 개발사업을 S프로젝트의 시범사업으로 간주해 지원했고 문정인(文正仁) 위원장이 정부를 대신해 ‘정부지원 의향서’를 써 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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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구의 설치 근거인 ‘동북아시대위원회 규정’(대통령령)에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명시돼 있으나 실제로는 외자유치와 같은 집행업무에 나서면서 월권 시비에 휩싸인 것이다. 이 규정 12조에는 직무수행을 위해 관계기관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협조 요청의 범위는 자료 및 의견 제출로 제한돼 있다.

특히 행담도개발㈜ 측과 사업협력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한 것은 권한 남용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찬용(鄭燦龍)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이 재임 중 이 사업에 개입한 것도 공직 인사라는 본연의 업무 영역을 넘어선 것이어서 비판의 소지가 크다. 또 공직에서 물러난 뒤 야인(野人) 신분으로 행남도개발㈜과 한국도로공사 측의 분쟁 중재에 나선 것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정치 사건인가?=행담도 개발사업 의혹을 계기로 실체가 전면에 드러난 S프로젝트는 국가균형발전의 일환이라는 게 당사자들 주장이다. 낙후된 호남 지역의 발전을 위한 장기적 청사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호남 민심을 의식한 정치적 복선도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동북아시대위는 이 사업에 500억 달러의 외국자본 유치계획이 들어 있고 싱가포르 측이 향후 20년간 2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부 내에서도 “꿈같은 얘기”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적지 않다.

호남 출신인 정 전 수석이 사업의 초기구상 단계 및 중재 과정에 개입한 점, 대통령 자문기구가 민간 섹터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점 등은 정상적인 국가사업 수립 과정으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북아시대위는 감사원 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지난주에야 S프로젝트를 국무총리실로 넘겼다. 문제가 되자 비공식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을 뒤늦게 공식화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김재복에 놀아난 정부=행담도개발㈜ 사장 김재복 씨가 발행한 채권을 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6000만 달러)와 교원공제회(2300만 달러)가 매입한 전후 사정도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감사원은 채권 매입 과정에 법률적 하자는 없지만 다른 곡절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조사해 왔다.

본보 취재 결과에 따르면 김 사장은 도로공사와 자금조달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다가 독자적으로 행담도개발㈜ 주식을 우정사업본부와 교원공제회에 담보로 제공해 매매를 성사시키고 2월 15일 돈까지 받았다.

김 사장은 이 과정에서 도공 측에 주식 담보 제공 허락을 받으려 했으나 도공이 이를 거부하자 동북아시대위원회에 “도공이 발목을 잡는다”며 SOS를 쳤다. 동북아시대위는 이에 도공 측에 “질질 끌지 마라”고 했고, 건설교통부 김세호(金世浩) 당시 차관에게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는 등 김 사장 편을 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김 사장과 도공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고, 도공은 문 위원장 등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품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어이없는 道公▼

행담도 개발사업이 사업 초기부터 치밀한 계획 없이 엉성하게 시작됐으며 사업 추진 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도로공사의 2003년 10월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 참석한 이사들은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사업의 타당성을 오점록 전 사장에게 물었으나 오 전 사장은 “검토하겠다”며 넘어갔다. 이는 최근 한나라당 김태환(金泰煥) 의원이 회의록을 공개한 2004년 1월의 이사회가 열리기 석 달 전의 일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도공은 사업 초기 계약을 하면서 행담도개발㈜의 리조트 시설 운영 기간을 당초 계획인 30년보다 6년을 더 연장해줬다. 이로 인한 경영손실은 573억 원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대해 오 전 사장은 “직원의 실수”라며 “그것 때문에 감사원에서 많이 혼났다”고 말했다.

도공은 또 2003년 9월 이사회의 동의 없이 행담도개발㈜과 지원 약정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들의 항의에 오 전 사장이 “(제가 취임하기 전인) 1999년 이사회에 구두로 보고했다고 해서 협약을 했다”고 해명하자 김모 이사는 “행담도 사업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다”고 대꾸했다.

김 이사는 행담도개발㈜의 채권 발행 때 도공이 담보를 제공한다는 등의 계약 조건에 대해서도 “사업이 망한 다음 부도난 업체의 이권을 싸게 사서 뭘 어떻게 하겠느냐”고 따졌다. 이에 오 전 사장과 당시 박승기 도공 기획본부장은 “사업이 부도나도 시설물은 우리가 인수하게 된다”며 “염려 없다”고 대답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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